메모장을 정리하다 3, 4월에 써놓은 글을 읽었는데 지금과 태도가 많이 달라서 놀랐다. 그때 나는 갑자기 찾아온 명랑하고 무탈한 날들에 놀라서, "지금 나는 좀 행복한 것 같다 당황스럽다 나도 이런 기분이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아마 이 행복은 잠깐일 테고 분명 조만간 또 존나 불행해질 거니까 지금을 맘껏 누리고 기록해둬야겠다"라고 횡설수설 적어놓았다. 말하자면 갑자기 잔잔해진 파도에 기뻐하면서도, 땅을 딛고 선 발에는 힘을 풀지 않고 계속 수평선을 노려보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계절이 두 번 지나고, 지금 나는 마치 태어났을 때부터 명랑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는 일 같은 건 없을 사람처럼 살고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쓴, 산다는 건 수면에 입술만 동동 띄우고 겨우 뻐끔거리는 거라고 말하는 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아냐, 사는 데는 그거 말고도 좀 환한 구석도 있는 것 같아, 라고 중얼거리면서. 아픈 것들로부터 잠시 도망쳐서, 귀여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래 쌓아온 아픈 생각들이 모서리부터 조금씩 부스러지고, 전처럼 모든 것을 부러 삐딱하게 쳐다보지 않게 되고...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든 거다. 지금 파도가 밀려오면, 난 발버둥도 못 치고 떠내려갈 거야. 다신 돌아오지 않게 멀리까지 밀려갈 거야.

어떻게 하지. 난 평생 불행이랑 손잡고 다니고 싶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춤추고 깔깔거리면서 살고 싶다. 기분이 좀 좋을 때마다 '이건 순간이야 곧 모든 게 좆같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피곤하고 우울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어리석다. 하지만 언제까지 숨어서 아무 것도 없는 척 할 수는 없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상처는 벌어진 채로 아직 여기 있다. 파도는 언제라도, 당장이라도 나를 다시 무너뜨릴 수 있다.

...라고, 아직 바다도 잠잠하고 바람도 산들산들 좋은 날에 써본다. 파도는 언제 올까. 지금 아무리 걱정하고 있어도 결국 그때 얼마나 아플지는 그때 가봐야 아는 거니까, 우선 지금은 우리 여기서 춤추고 놀자. 물고기 잡아 구워 먹고 모닥불 옆에서 손 잡고 자자. 놀면서 나 조금씩 튼튼해질게. 튼튼해져서 파도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고 버틸게. 우리 그렇게 버티면서 꼭 같이 있자.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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