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9월이 끝나면 깨워주세요. 9월 초부터 심심할 때마다 흥얼거렸던 곡인데, 세상에, 벌써 9월이 끝나 버렸다. 어제의 밤하늘은 깜짝 놀랄 만큼 춥고 별이 총총했다. 여름이 끝났다. 이상하고 조용하고 소란하고 어지럽고 아름답고, 그리고 엄청나게 지루하고 일상적이었던, 참 길었던 여름. 스무 살의 봄(http://posty.pe/1fktle)이 낯설고 반짝이는 세계였다면, 나의 스무 살의 여름은 조용히 빛이 깜박이던 세계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모여 예쁜 불빛을 구경하면서, 불빛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두려워했다. 그렇다. 9월이 끝나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는 날이 멀어진다. 하지 못한 말들이 쌓인 채 먼지가 앉아간다.

 

(난 그럴수록 예쁜 것들을 더 열심히 적어두기로 했다. 나의 여름은 이렇게 혼란하고 아름다웠다고)


더운지도 몰랐던 초여름이 있었다. 세상에 너랑 나밖에 없던 날들. 오늘은 뭘 먹을까? 하고 재료를 사다 다듬고 끓이고 볶아서 해먹던 점심과 저녁. (좀 창피한데 진짜 소중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 이상한 산책, 텅 빈 동네, 느리게 또 빠르게 흐르던 시간과,

몇 번의 여행. 밤바다에서 추던 춤. 폭발하고 사라지던 불꽃. 낯선 도시에서 혼자 타던 택시. 고궁의 불빛. 지하철과 지하철역(지하철을 잘 타지 않는 곳에서 자란 내 눈에 지하철역은 전부 귀엽고 아름다웠고 무표정한 그곳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잘 내지 않는 목소리를 내고, 잘 짓지 않는 표정을 짓고, 세상이 조금 말랑해진 것만 같은 어리석은 기분으로 뛰어다니던 날들과,

아무것도,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낸 6주,

하늘. (나는 수도 없이 고개를 들고 멍청하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색깔들. 초록, 파랑, 보라, 분홍, 하양, 남색, 주황, 노랑, 빨강, 그리고 말을 멎게 하는 다른 모든 색깔들. 아무 할 일도 없고, 어제도 내일도 없고, 그냥 드러누워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던 오후. 서울에서 본, 눈이 쨍하게 선명하던 파랑. 혼자 아득히 날아가던 황새.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중얼거리던 친구. 간만에 날이 맑아 촘촘히 박힌 별들 아래 둥글게 둥글게 손 잡고 뛰던 밤과,

신문. 나는 1학기 때부터 학보사에서 일했는데 2학기가 되자 상황이 좀 달라졌다. 수습 딱지를 떼자마자 선배들이 줄줄이 그만두었다. 임기 만료, 군대, 휴학, 아니면 그냥. 이유는 다양했고, 내 책임과 업무량은 열 배로 늘었다. 공강인데 놀 수 없었고, 밤인데 잘 수 없었고,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글은 써지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수습은 기사 두 개를 펑크 내고 도망가버렸다. (나는 다음 발행부터 편집장이다) 머리속이 하얗게 말라가던 불면의 밤들과,

아이들. 달팽쌤! 하고 부르던 목소리. 안아주고, 업어주고, 혼내고 달래고 놀아주고 포켓몬을 그려주던 일주일. 아이들은 천사가 아니라 사람이라서, 따돌리고 싸우고 때리고 맞고 욕하고 계급을 나누고 눈치를 봤다. 얼뜨기 대학생 선생님들은 밤을 새워 이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우리는, 곧 선생님이 될 학생인 우리는, 깨끗하지도 선하지도 못한 세상을 사는 우리는, 그 바쁜 일정 속에서 기어코 썸을 타고 싸움을 하는 철없는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달팽쌤, 달팽이쌤! 하고 부르던 그 영악하고 순수한 목소리들에게. 그렇게 하얗게 밤을 새우던 고민들과,

그리고 우리. 내게 봄을 가져다준 친구들. 개강하고 우리는 자주 만났고 만나서 늘 울었다. 주로 바보 같은 이유들이었다. 우리는 다 구제할 길 없는 바보들이었고, 꼬이고 한심한 생각만 가득했고, 우리가 더이상 우리가 아니게 될까봐 늘 두려웠다. 너희가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아, 라고 술에 취해서 울음을 터뜨리던 너. 사소한 실수가, 오해가, 바보같은 착각이 쌓여가고. 사실 너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몇 번 울었어, 라고 너는 말했고 나는 며칠 잠을 못 잤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동안 나는. 너를 울렸으면서 그것도 모르고 나는. 결국 며칠 뒤 이번에는 내가 취해서 울음을 터뜨리고, 다음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울고, 한심한 한바탕이 끝나면 다같이 둥기둥기 껴안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애가 있었다."네가 울려다가 참는 모습을 몇 번 봤어.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어. 지금 이렇게 울어줘서 고마워."


지금 오고 있는 비가 그치면 이젠 정말로 추워질 것이다. 예쁜 이름의 계절이 또 지나갔다. 이제 내 스무 살은 백 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이 쌓이고, 나는 아직도 어리석어서 앞으로의 일은 하나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 놓는다. 이런 여름이 있었어. 전체적으로 지루하고 한심하고 촌스러웠어. 그리고 무척 아름다웠어. 스무 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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