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더니 순식간에 추워졌다. 글을 쓴 지가 오래되었다. 글로 절대 쓸 수 없는 마음들이, 바람이, 모래가, 구름이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혼란해서, 상황과 마음이 조금 고요해지면 A에 대한 세 번째 글을 쓰려고 했는데 더 큰 파도가 찾아와버렸다. 언젠가는 어제와 오늘과, 생각이 꼬리를 물던 밤과 일렁이던 마음을 정리해서 완성된 글로 써낼 수 있겠지. 지금은 아니다. 왜냐하면 난 지금 모든 단어를 잊어버린 상태이니까. 왜냐하면 네가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그 말은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그 어떤 단어와도 달랐고,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도 믿기지도 않아서, 나는 계속 뭐라고? 뭐라고 했어? 응 뭐라고? 거듭 물었고 A는 화내지 않고 다 대답해 주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통, 통, 통, 그 낱말이 마음의 수면 위를 물수제비 하듯 종일 뛰어다녔고, 나는 그 울림과 파동 때문에 잠시도 고요히 떠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흔하고, 닳은 돌멩이 같은 말이 이렇게 가슴을 둥둥 두드릴 줄은 몰랐는데.

스무 번은 더 듣고 나서 A의 성화에 못 이겨 나도 사랑해, 라고 한 번 말해주었다. 나도 사랑해, 그 말이 내 입술을 떠난 순간 나는 전과는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대. 나 자신도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으면서. 난 이미 널 몇 번 울렸고 앞으로도 많은 상처를 줄 테고, 너를 사랑하면서 어쩌면 나는 그동안 몰랐던 내 밑바닥을 들여다볼 테고, 또 어쩌면 너의 밑바닥도 들여다볼테고, 어쩌면 우리는 서로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그게 두렵지만,

그래도 들은 게 있으니까 대답을 해야지. 나랑 하나도 안 어울리는 다정하고 연약하고 단단한 사람아, 내 친구 A,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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