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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이 될 거야(1)

#2018_여성작가 상반기 정리

존경하는 북조님의 이 글(http://posty.pe/349d8r)을 읽고 나도 지금까지 읽은 #2018_여성작가 책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는 '꼭 여성 작가만 읽겠어!' 한 건 아니고 가끔 남성 작가의 책도 읽었지만, 그래도 이 해시태그에 참여하면서 책을 고를 때 의도적으로 여성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 결과 이상하게도 작가의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읽을 때보다 훨씬 풍부하고 질 좋은 독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여러분도 트위터에 #2018_여성작가를 검색해보면 훌륭한 여성 독자들이 훌륭한 여성 작가들을 추천하는 훈훈한 광경을 보실 수 있다. 비록 내 소개글은 별로 훌륭하지 않겠지만 내가 소개할 책들은 진짜로 좋은 작품들이다. 진짜다. 믿어주세요...


(스포일러 포함)

<빨간 모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고양이 발 살인 사건> 코니 윌리스

나는 이제 종이책을 잘 사지 않는다. 종이책은 전자책보다 훨씬 비싸고 무거운 데다 누워서 읽기도 전자책보다 불편하다. 그러나 작년 12월 코니 윌리스의 크리스마스 작품 모음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두 권의 책과 알라딘에서 사은품으로 보내준 스노우볼이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3만원은 상당한 거금이었으나 난 이미 눈이 뒤집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 저건 사야해!!

(이때 받은 스노우볼은 명절에 찾아온 사촌동생이 깨뜨렸다. 내가 상심하자 짝꿍이 다른 스노우볼을 사주었는데 그건 내가 깨뜨렸다. 나 같은 사람은 유리로 된 것을 가지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영미권 소설이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짜 향수'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정말로 빳빳하게 풀을 먹인 원피스를 입고 에나멜 구두를 신고 사촌들과 피크닉을 가서 폭신폭신한 스펀지 케이크를 먹은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 역시 나의 가짜 크리스마스 추억을 잔뜩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따뜻하고, 명랑하고,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 문제는 이 책을 쓴 사람이 '그' 코니 윌리스라는 거다. 그가 그리는 크리스마스는 심하게 명랑하고 지나치게 시끌벅적해서 읽다 보면 제발 다들 조용히 좀 해달라고 엎드려 울고 싶어진다. 환경을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유령이 등장하는 '기적'이 그렇고, 하필 크리스마스에 지구에 도착해 죽치고 앉아있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가 그렇고,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절찬 상영중'이 그렇다. 시끄럽고 정신 사납고 모든 것이 꼬이는 것 같지만, 큰 걱정 하지 말고 그저 깔깔 웃으며 읽고 있으면 결국 모든 것이 깔끔하게 매듭을 짓는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코펠리우스 장난감 가게'와 '고양이 발 살인사건'은 좀더 싸늘하고, '말하라, 유령'과 '우리가 알던 이들처럼'은 좀더 따스하다. '우리 여관에는 방이 없어요'와 '동방박사들의 여정'은 최초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인 성경을 좀더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읽다 보면 코니 윌리스가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아진다. 항상투덜투덜 욕하면서 매주 되게 열심히 교회 다니실 것 같아... 귀여우셔라. 특히 '동방박사의 여정'이 좋았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동방박사의 여정, 즉 확실한 근거도 없이 춥고 외로운 가운데 흔들리는 믿음 하나만 붙잡고 목적지 없는 먼 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생 그 자체도.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최근에 '어린왕자'의 결말이 동심 파괴적이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말을 알고 충격을 받았고, 나도 무척 놀랐다. 아니, 어린왕자가 죽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이야? 어린왕자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하지만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나만 해도 프랑켄슈타인 하면 떠오르는 게 머리에 볼트와 너트가 박힌 초록색 괴물뿐이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끄어어..." 하면서 비틀비틀 걸어다니지 않는다. 그는 따뜻하고 순진한 성품의 소유자로, 설득력 있는 말솜씨와 적절한 유머 감각을 두루 갖춘 문명 괴물(?)이다. 프랑켄슈타인이 "그 얼굴을 내 눈앞에서 치워라"라고 소리치자 난 꺼질 생각 없으니 네가 안 보면 되는 거 아니냐며 창조주의 눈을 가려버리는 장면에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악의도 없이 선량하게 살려고 했으나 사회에게도 창조주에게도 멸시받고 배척당한 괴물은 결국 복수를 위해 창조주를 쫓기 시작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열심히 도망쳐도 보고 싸워도 보지만 사실 영 시원치 않다. (쫓기는 중에 신혼여행을 왜 가...) 느리게, 그러나 끈질기게 프랑켄슈타인을 쫓는 괴물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운명과 같아 보였다. 슬프고, 잔인하고, 벗어날 수 없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둘을 죽이는 것은 결국 서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이 작품을 쓸 때 메리 셸리는 열아홉 살. 아마 만 나이였을 테니까 나랑 또래다. 같은 나이여도 누군가는 sf의 시초가 되는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에헤헤 괴물 귀엽다 이히히히" 이런 감상이나 쓰는 것이다. 세상에 천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옆집의 영희 씨> 정소연

이 책은 사실 도서관에서 후다닥 읽어서 차분히 기록해 두거나 할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 단편 몇 개는 못 읽었고. 지금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정말 안 좋은 단편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 일상 속의 가벼운 sf부터 더 본격적인 작품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단언컨대 재미 없는 단편은 없다.

그의 소설에는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지구에서라면 해외입양아로 불렸을) 우주입양아, (역시 지구에서라면 외국인으로 불렸을) 외계인까지. 이들은 담담히, 멈추지 않고 삶을 살아가고, 작가는 사려 깊은 눈으로 이들을 바라본다. 사려 깊다. 이것이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슬프지만, 사려 깊고, 우아하다.

이 책의 작가인 정소연이 현직 변호사이며(!) 사회복지학과 철학과 법학을 전공했으며(!!)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이고(!!!) 이 책에 실린 <우주류>와 <마산앞바다>는 대학생 때 발표했다는(!!!!) 사실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심지어 고양이도 키우신다고 한다. 이렇게 완벽해도 되나. 다시 한번, 세상에 천재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박지리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얼핏 벽돌로 착각하기 쉽다. 무려 856페이지. 책을 읽는 중에 누가 방해하면 모서리로 신속하게 처리한 뒤 시체를 깔고 앉아 마저 읽으라는, 책의 주제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만 같다. 난 이 책을 틈틈이 오래오래 읽으려고 샀다. 이렇게 두꺼우니까 천천히 읽으면 일주일도 걸리고 한 달도 걸리겠지, 생각하면서. 그러나 856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는, 딱 하루 걸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거의 눈도 못 깜박이고 읽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1지구부터 9지구까지, 철저하게 계급화된 사회의 최상류층 가정. 주인공 다윈 영은 1지구에서도 엘리트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원칙상으로는 다른 지구 학생도 입학이 가능하나 당연히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프라임 스쿨'의 학생으로, 세상 착하게만 자란 순진하고 해맑은 소년이다. 첫눈에 반한 소녀 루미를 따라 30년 전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다윈은 점차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모순과 악을 깨닫고, 추리 소설처럼 흘러가던 이야기는 방향을 틀어 '악의 기원'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 러너 영, 아버지 니스 영, 그리고 다윈 자신... 사랑했던 모든 것이 사실 위선과 악으로 가득한 소굴이었다면,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버려야만 한다면, 다윈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1지구 사람들은 정도가 다를 뿐 모두 지독한 속물들이다. 그들의 우아하고 뻔뻔한 말투가 너무 싫어서 나는 책의 제목이 '악의 기원'인 것조차 잊어버리고 소설 속 세계의 민주화를 진심으로 고대하게 되었다. 또 YA소설은 대체로 결말이 희망적이니까 이것도 그럴 줄 알았지... 다윈이 한창 치열하게 갈등중일 때 나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깨어나라 다윈! 빨간 약을 먹어라! 단결! 투쟁! 노조 합법화!!"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윈은 제이의 순정한 논리를 체화하고 스스로 거대한 악의 일부가 된다. 이전에 수많은 반항적인 1지구 소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소설 속 세계는 앞으로도 평화롭게 유지될 것이다. 이곳에서 악은 추한 것, 악의적인 것, 끔찍한 것이 아니다. 소설 속의 살인자들 중 살인이 재밌고 좋다거나 누군가가 죽도록 미워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을 살인자로 만든 것, '진짜 악의 기원'은 세계를 지탱하는 계급 논리 그 자체이다. 아름다운 이 나라를 지키고 1지구를 지키고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세계는 철저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여기에서 모든 악이 출발한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사는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여기는 어떤가.


<열두째 나라> 김혜진

김혜진의 <열두째 나라>는 판타지 동화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초등학생 시절 <아로와 완전한 세계>, <지팡이 경주>, <아무도 모르는 색깔>을 차례대로 읽으면서 나는 이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네 번째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은 책을 읽는 데 어디 나이가 중요하나. 이 자리를 빌어 나는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김혜진의 완전한 세계 시리즈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환갑까지 누가 읽어도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진짜다. 이미 어린 독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믿)지만, 이 시리즈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완전한 세계야말로 서양의 엘프나 드래곤이 등장하지 않는 진정한 한국식 판타지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전부 순우리말로 된 이름들은 또 얼마나 사랑스럽고... 이쯤 해두겠다. 정 본인이 읽기에 유치하다 싶으면 주변의 초등학생들에게 선물이라도 해달라. 동화치고는 분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에게 적합할 것이다.

세계관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완전한 세계'이고 어딘가에 '완전한 세계'가 존재한다. 별꽃나라, 노래나라, 색채나라, 섬나라, 초원나라, 산나라, 유리성, 건축도시, 공중도시, 호수섬, 불의 나라, 그리고 꿈의 사막. 뚜렷한 개성을 지닌 열두 나라로 이루어진 완전한 세계로 가는 방법은, 불완전한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라는 책의 '읽는이'가 되는 것이다. 책을 다 읽으면 무사히 불완전한 세계로 돌아갈 수 있지만, 완전한 세계도 여기만큼이나 탐욕과 불신과 관료주의가 팽배한 곳이라서 귀한 손님인 읽는이는 자주 권력 다툼에 말려들게 되고, 그렇게 모험이 시작된다.

앞의 세 권이 아로, 아현, 아진 삼남매가 차례대로 완전한 세계에서 겪는 모험을 그려냈다면, 네 번째 책인 <열두째 나라>는 완전한 세계의 과거를 다룬다. 아기 때 공중도시에서 버려져 꿈의 사막에서 자라난, 그래서 날개가 있지만 날 줄은 모르는 소년 '참'이 한 아이의 작은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친구 '명'과 함께 떠나는 모험 이야기. 작은 소망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거대한 음모에 얽혀 있었고, 그 음모는 또한 억압받고 차별당했던 한 민족의 소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흥미진진한 모험과 더불어 모나시나로, 오디센, 뮬, 브엘, 빈땅왕 등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완전한 세계의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장 높은 곳에서 버려진 아이가 가장 낮은 곳의 비밀을 밝히고 온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 이 거대한 모험이 한 아이의 작은 소망 하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언제 읽어도 감동적이다. 소설은 줄곧 '소망(꿈의 사막, 밤)'과 '희망(공중도시, 낮)'를 대비하며 소망과 희망 모두 소중하며, 둘은 반드시 함께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루고픈 소망은 꿈 안에, 그러나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은 꿈 밖에.'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세상 밖으로 나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곳에서 희망은 시작된다.


<나의 진짜 아이들> 조 월튼

패트리샤의 남자친구 마크는 정말 글러먹은 자식이다. 청혼을 전화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것도 '지금 당장' 결혼해야 한다니. 패트리샤는 이 어처구니 없는 청혼에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세계는 두 개로 갈라진다. 예스의 세계와 노의 세계.

이 소설은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 같은 "what if?"가 아니다. 마크와의 결혼 생활도, 비와 함께한 삶도 둘 다 진짜로 일어난 일이다. 절대로 겹치지 않는 두 개의 삶 속에서 패트리샤는 아이를 낳고 환호하고 절망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삶 속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다른 삶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삶에서는 전염병이 퍼지고 다른 삶에서는 아들이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는다. 어떤 삶에서는 평생 이어지는 눈부신 사랑을 하고, 다른 삶에서는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이 견뎌낸다. 이제 아흔 살이 된 패트리샤는 혼란스럽다. 양쪽의 삶에서 낳은 아이들 중 누가 진짜 그의 아이들인가? 어떤 것이 진짜 그의 삶인가? 트리샤의 삶? 팻의 삶?

나는 이 책을 3월 8일 여성의 날에 읽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패트리샤의 삶은 '결혼은 여자 인생의 무덤'이라는 지극히 온당한 진리를 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여성이 남성의 지배권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스스로 탐색하고 이끌어 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그리고 마크와의 결혼을 택한 쪽의 패트리샤도 남편이 인생을 멋대로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극심한 억압 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끝내는 이혼을 택한 뒤 페미니즘 강좌를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먹먹하고 아름답다. 양쪽 삶 모두에서 패트리샤는 자신을 찾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깜박이는 기억력을 붙잡고 최선을 다해 쓰고 있는데 이제 겨우 3분의 1이다. 책 안 읽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네... 2편에서 만나요. 그때는 좀 덜 아무말 대잔치이기를. 7천 자가 넘었는데 끝까지 읽은 분이 있다면 정말 고마워요. 그 근성으로 이제 제가 추천한 여성작가 책도 읽으시면 됩니다.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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