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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27 오늘의 일기

1.

오늘은 2학년 2학기의 첫 날이고, 나는 지금 제주도에 있다. 몇 달 전 친구들과 여행 날짜를 잡을 때 내가 개강 날짜를 까먹어서(사실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됐다. 이번 학기에는 기필코 공부를 좀 해서 2점대 성적을 벗어나보려고 했는데 첫 주부터 수업 째고 여행이라니 다 틀렸다. 어쩔 수 없지. 공부는 다음 학기부터...


2.

태풍은 지난주에 지나갔는데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내내 두려움에 떨었다. 학교에서 청주버스터미널로 가는 513번 버스에서, 청주에서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에서, 광주공항에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차 바퀴가 미끄러지거나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하지? 청주에 있어야 할 딸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되면 아빠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행을 숨겼음을 들통나는 것은 죽어서도 두려웠다. 지금도 열심히 삽탄(총이나 포에 탄알을 끼워 넣어 발사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함) 중일 남자친구에게는 내 죽음을 어떻게 알리지? 나와 남자친구에게는 공통된 지인이 없다시피하다. 나의 장례식에서 아빠와 남자친구가 처음 만나는 상상을 해봤는데 그건 정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고 싶은 어색한 장면이었다. 죽음이 코앞에 왔을 때 그 침묵의 장례식을 생각하면 벌떡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를 흘리며)안 돼!! 내게는 여우 같은 애인과 토끼 같은 아빠가 있다!!! 둘을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할 순 없어!!!(비틀비틀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3.

밤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다. 버스는 이미 막차가 지나간 뒤. 택시 승강장에는 이미 줄이 1km 정도 늘어서 있었다. 그 줄 끝에 서서 내내 생각했다. 차를 사야 한다. 차를 사야 한다. 차를 살 것이다...!


4.

택시는 신나게 달렸다. 미터기의 숫자도 신나게 달렸다. 심야 할증 만세! 미터기를 외면하기 위해 창밖만 쳐다봤는데 먼 바다에 불빛들이 가로등처럼 줄줄이 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고기잡이배라고 했다. 갈치, 한치, 이런 고기를 잡기 위해 배에 불을 밝혀 놓았다고.

불빛은 띄엄띄엄,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먼 밤바다에 뜬 불빛들. 어떤 신호처럼 흘러가는 불빛이 아름다워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는데 친구들이 "야 갬셩 터졌다~~~" 하는 소리가 다 녹음돼서 대신 사진을 올린다. 불빛을 보고 슬퍼지지 않는 법은 아직 모른다. 그래도 얘네랑 있을 때는 민망하니까 티 내면 안된다.


5.

내일은 바다를 본다. 일정은 그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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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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