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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

새벽에 보낸 편지

언니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저도 최근 몇 달간 많이 고민하고 있는 주제였기 때문에. 특히 ‘그런 사랑을 할 힘이 없던 거였다’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 저는 그런 식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좀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는데,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요. 혐오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예의예요. 제가 샤리아남 다 재기하라는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제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게 예의이기 때문이에요. 사랑과 연대와 진보주의 사회참여 어쩌구는 여력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만 예의는 사람이라면 다 지켜야 하는 거니까요. 피씨함을 말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사랑이 넘쳐서가 아니라 ‘피씨’가 political correctness, 즉 올바른 것, 옳은 것이기 때문에 말하고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한가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옳은 것을 생각하는 것은 실제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먼 길을 가고 있고, 목적지를 잊으면 운동의 방향이 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여성혐오에 분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그 피해자이기 때문이지만,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옳지 않기 때문이에요. 저는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난민혐오, 장애인 혐오, 성소수자와 빈민과 기타 약자 혐오에 반대해요. 물론 저는 난민도 장애인도 아니기 때문에 이 이슈에 있어서는 여성혐오보다 훨씬 소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고, 아니면 전혀 연대하지 않아도 윤리적으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러고 있고요. 눈앞에 닥친 일상을 살아내느라, 그리고 피부로 와닿는 여성혐오에 분노하느라 저는 많은 이슈에 전혀 연대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렇다고 누가 저를 비난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제가 혐오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것은 적극적인 가해예요. 단순히 사랑할 여유가 없는 것과는 달라요.

어떤 혐오에 변명의 여지를 주기 시작한다면 여성혐오에도 변명의 여지가 생기겠지요.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 중 많은 수는 어떤 기준에서는 피해자겠지만 그게 면죄부가 되지 않잖아요.

저는 어떤 사안에 있어 입장을 정해야 할 때, 쉬운 것을 경계하자고 생각해요. 언니 말처럼 이건 혐오다, 라고 판결만 내리는 것은 쉽고 저는 그것을 지양하려고 하고 있어요. (앞에서 제가 쓴 글은 제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원론적인 면이 있고 따지기 시작하면 더 복잡한, 여성을 무조건 혐오자로 몰 수 없는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어요. 다만 그걸 다 이야기하기에는 시간도 저의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커다란 얘기들만 한 건데 나중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요.) 하지만 세상을 하나의 층위로 해석하는 것도 쉬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다양한 층위의 혐오와 권력관계가 있고, 어떤 것은 서로 깊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기도 해요. 워마드에서 일베 말투를 미러링하잖아요. 미러링의 페미니즘적 의의와 성취에 대해 저는 많이 알지 못하지만, 여성들이 “~노” “이기야” 말투를 쓰는 걸 볼 때 여성이자 호남인인 저는 상처 받아요. 이것은 별 것 아닌 사례이고 저야 그냥 속상한 정도이지만, 어떤 이들은 존엄성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겠죠.

저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하고 (언니 표현을 빌리면) 휴머니스트이도 하고 진보 좌파 지식인(?)이기도 하고, 이상주의자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칸트주의자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런 건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지금 제가 어떤 대전제로 생각하고 있는 건 이거 하나예요. 가해가 어떤 변명이나 해결책이나 논리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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