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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떠나는 여행

동화 '세상에서 가장 하얀 생쥐'

나는야 새하얀 생쥐.
눈처럼 새하얗지.
비가 내리지 않을 때만
바깥에 나갈 거야.
이 멋진 털옷을
더럽히고 싶지 않거든.

예쁘고 새하얀 생쥐가 노래합니다. 너무너무 깔끔한 성격의 이 생쥐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깨끗한 자기 털옷이 더 소중하대요. 작은 집 안에서 하얀 털옷을 뽐내는 생쥐의 표정은 의기양양합니다.

그런데 어느 봄날, 생쥐는 바람에 날리는 씨앗을 쫓아가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립니다.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대요! 생쥐는 터덜터덜 집을 찾아 걷다가, 풍차 날개가 달린 어느 멋진 집에 도착합니다. '우리 집일까?' 생쥐는 풍차 집의 문을 똑똑! 두드리지만, 그곳은 생쥐의 집이 아니었어요. 풍차 집의 주인은 새가 지저귀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투명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파랗기도 하단다.
힘이 세지만, 어떨 때는 한없이 부드럽지.
태풍이 될 때도,
비단처럼 부드러울 때도 있거든.
새가 날아다니고,
가끔 거세게 울부짖기도 하지.
둥지도, 구름도, 연도 많이 있단다.
자, 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렴!

생쥐는 곰곰이 생각하고 대답합니다. "아하, 이제 알겠어요! 이곳은 우리 집이 아니라, 바람의 집이에요!" 생쥐는 상쾌한 바람에 날리고 날려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하얀 털옷이 잿빛으로 더러워졌는데도 말이에요. 생쥐는 바람의 집을 나선 뒤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 불의 집, 물고기가 헤엄치는 물의 집을 차례로 찾아갑니다. 신나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생쥐는 이제 비가 내리는 날에도 바깥에 나가기를 좋아하게 되어요.



스페인의 동화작가이자 시인 마르 베네가스가 글을 쓰고 안드레아 안티노리가 그림을 그린 책 <세상에서 가장 하얀 생쥐>의 줄거리입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짧은 책인데, 일단 참 귀엽고 귀엽고 귀엽습니다. 생쥐의 씩씩한 미소와 멋진 수염과 노란 기타를 보면 누구든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얀 생쥐와 강렬하게 대비되는 알록달록 화려한 색깔들은 눈을 무척 즐겁게 합니다. 삽화 속에서 깜짝 등장하는 펭귄, 도마뱀, 물고기 친구들은 또 얼마나 귀여운데요! 얼핏 단순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볼 수록 사랑스러운 포인트가 많은 책입니다.


생쥐 너무 귀엽죠. 저 입모양 좀 보세요.
생쥐 너무 귀엽죠. 저 입모양 좀 보세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작은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는 지렁이.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작은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는 지렁이.
이 친구는 도마뱀.
이 친구는 도마뱀.
왼쪽부터 코끼리 코, 뱀, 개미입니다. 세상에 저 개미 좀 보세요!
왼쪽부터 코끼리 코, 뱀, 개미입니다. 세상에 저 개미 좀 보세요!

하얀 털옷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 생쥐의 마음은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어릴 때 파란 원피스를 좋아했는데요, 등 뒤에 긴 리본이 달려 있어서 그네를 타면 리본이 아주 멋지게 휘날렸어요. 그래서 그 옷을 입은 날이면 놀이터에서 그네밖에 안 탔습니다. 미끄럼틀도 안 타고 흙장난도 안 하고. 예쁜 옷을 더럽히기 싫었거든요. 지금도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왠지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그렇잖아요.

비단 옷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집에 있는 장난감이 좋아서. 바깥은 왠지 무서워서. 새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워서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하얀 생쥐 같은 어린이들도 있지요. 밖에 나가면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도 무섭고, 산책하는 강아지도 무섭고, 자꾸 인사하라고 하는 이웃 어른들도 무서우니까 집에만 있고 싶은 거예요.

이런 어린이들을 대신해 생쥐가 여행을 떠납니다. 처음에는 길을 잃어서 어쩔 수 없이 떠난 여행이지만, 상쾌한 바람, 따뜻한 불, 부드러운 물의 집을 찾아가면서 생쥐는 점점 신이 납니다. 바람과 불과 물이 생쥐에게 들려주는 노래는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손에 잡힐 듯 감각적입니다. 저는 마지막에 도착한 생쥐의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이곳엔 숲이 자라고 있단다.
드넓은 숲속,
진흙 정원,
아름다운 담쟁이가 살고 있지.
코끼리가 산책하고
뱀은 휘파람을 불고
개미가 줄을 맞춰 걷고
생쥐는 단잠을 잔단다.

여행을 계속하면서 생쥐의 털옷은 점점 지저분해지지만, 생쥐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게 무서워 돌아가기에는 눈앞의 세상이 즐겁고 신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책을 읽는 어린이들도 생쥐와 함께 여행하면서, 마음 속의 하얀 털옷을 잠시 벗어 두고 한 걸음 나서게 되지 않을까요. 어린이가 만날 진짜 세상은 책 속보다 훨씬 신나는 일이 많을 테니까요. 먼저 마음을 열고 말을 건다면 바람보다 물보다 더 다정하게 대답해줄 친구들도 많고요. 이 책은 하얀 생쥐의 손을 빌어 꼭꼭 숨어있던 어린이의 마음을 똑똑! 두드립니다.

저는 생쥐처럼 내성적인 어린이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활발한 어린이였지요. 제가 숨어들게 된 건 오히려 사춘기가 지나면서였던 것 같습니다. 제겐 간직하고 싶은 하얀 털옷이 생겼고, 제가 밖에 나가서 옷을 더럽히기도 싫었고 남이 제 마음 속에 들어와 털옷을 만져 보는 것도 싫었어요. 언젠가부터 저도 하얀 생쥐처럼 집 안에서 노래만 부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이미 어른이 된 제게도 해맑고 다정한 격려를 건넵니다. 이제 책 한 권에 인생이 바뀔만큼 말랑한 마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도 오늘은 집 밖으로 나가서 모르는 문을 한번 두드려 보려구요. 다정한 바람이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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