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내 20대의 첫날은 다른 모든 날처럼 시시하게 흘러갔다. 뭐야, 시시하잖아, 하는 실망감조차 시시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매년 1월 1일마다 나는 내 나이에 걸려 비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하나도 자라지 않았고 아직도 모자라고 한심하고 멍청한데, 시간은 자꾸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같은 예쁘고 환한 숫자들을 내 입에 우겨넣더니 이제 기어코 스물이 되고 말았다. 열두 살이 되면 요리도 하고 바느질도 하는 다 큰 숙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한 발짝도 자라지 않았는데 시간은 벌써.


자크 드미 감독의 영화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 1964)을 다운받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적어도 오늘의 마지막만큼은 시시하지 않을 거야. 우울한 하루의 끝에 예쁜 영화를 보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수록 좋다. 아름다움이 나를 구원할 거야. 어차피 내 삶은 앞으로도 감사한 시시함과 뜻밖의 반짝임과 익숙한 고통으로 가득하겠지만, 색채와 노래와 춤이 나를 구원할 거야.


2.

서로 깊이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우산 가게의 딸 쥬느뷔에브와 자동차 수리공 기. 둘은 결혼을 약속하지만 기가 징집 영장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다. 기가 떠난 뒤 쥬느뷔에브는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생활고에도 시달리면서 결국 보석상 카잘과 결혼한다. 전선에서 돌아온 기는 사실을 알고 충격받지만 그 역시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주유소를 운영하며 상처를 극복한다. 그리고 3년 뒤 눈 오는 날, 벤츠 한 대가 주유소에 멈춰 선다.


영화는 시종일관 우아하고 쓸쓸하고 아름답다. 모든 대사는 노래가 되어 영화 내내 한 순간도 끊이지 않는 음악과 함께 흐르고,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채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네이트판이나 아침드라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신파 이야기가 까뜨린느 드뇌브의 미모와 만나면서 한 편의 오페라로 변한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는 맹세에 대하여, 그 맹세가 무너지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에 대하여,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삶, 그러나 아이의 이름을 프랑수아즈라고 짓는다는 것에 대하여.


한 장면 한 장면을 치밀하게 공들여 만든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화려한 군무도 그럴 듯한 해피 엔딩도 없지만, 보고 있으면 어느새 가슴이 울렁울렁해지는. 왜 아름다운 것은 항상 슬플까.


3.

영화 <라라랜드>가 이 영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과연 비슷하다. 요즘 계속 옛날 뮤지컬 영화를 찾아 보고 있는데 이게 바로 내가 보고 싶어하는 영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복잡한 감정을 구차한 말과 눈물이 아닌 노래로 풀어내고, 신이 나면 일단 다같이 춤부터 추고 보는 영화. 그 어떤 인물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고, 갈등과 위기가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행복하게 잘 풀릴 거라는 것을 안다는 건 정말 큰 위안이고 기쁨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들이 아주 먼 옛날에 만들어져서 지금 나의 삶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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