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두 달 뒤 집을 떠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끝없고 지루한 싸움과 눈물과 상처가 있었다. 나는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눈물이 많아졌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끝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게 상처 받는 모습을 두 눈을 뜨고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말했고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이기적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를 생각해주는 건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나를 지킬 거야. 내가 끝내 나를 행복하게 할 거야. 매일 밤 웅크리고 누워 울면서 수백 번 생각했었다.


지금은 많은 게 가라앉았다.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 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나는 떠날 날만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일단 떠나면 나는 고요하고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헛된 희망을 키우고 있다. 아무 것도 아쉽지 않다. 동생만 빼고.


2.

우리 집은 딸이 셋이다. 나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집안일 잘 돕는 큰딸이고 둘째는 짜증을 잘 내고 반항을 하고 예쁨을 못 받는 둘째딸이고 막내는 애교에 능하고 귀여운 짓을 하고 집안 분위기를 살리는 막내딸이다. 우리는 토씨 하나 안 빼고 딸부자집의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해왔고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고장나고 뒤틀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들은 "네가 동생들을 챙겨야지"라는 말을 내면화해버렸고 결국 동생들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나는 한심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동생들. 전우들. 특히 우리 막내.


막내는 나보다 여섯 살이 어리다. 두 살 터울이라 동생이라기보다는 전생의 업보 같은 둘째와는 달리 막내는 영원히 나를 슬프게만 한다.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지만 막내는 영원히 내게는 어린애이고 이 애와 떨어지는 게 집을 떠나면서 내가 잃는 것 중 유일하게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그래서 지난 며칠간 막내를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주로 영화를 봤다. <라라랜드>, <신비한 동물사전>. 그리고 1월 2일에는 <로그원:스타워즈 스토리>를 보러 갔다.


3.

영화 포스터에는 "스타워즈를 한 편도 안 봐도 이해가 되는 영화!"라고 쓰여 있고 나는 그 말만 믿고 그 영화를 골랐다. 이해가 되긴 되더라. 하지만 시리즈를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의 감동의 깊이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나는 사실상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한 번은 영화관에서, 한 번은 영화 끝나고 트위터에서. 트위터 사람들의 친절한 설명을 제외하고 보면, 나와 동생이 본 영화는 "완전 멋진 진 어소와 예쁘게 생긴 카시안 그리고 그 동료들이 하얀 로봇들에 맞서서 쾅 투쾅 피융피융 우주선이 쉭쉭 펑 두두두두 그러다 설계도를 팍 다스베이더가 딱 폭탄이 쾅 레아 공주가 "Hope."하는 영화"였다. 진 어소가 잘생겨서 좋았고 원래 피 튀기는 걸 싫어하는데 나쁜 편이 다 로봇이라 안 잔인하게 죽어서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나는 이 세계관을 전혀 모르고 이들이 겪어온, 또는 겪을 역경이나 전쟁 같은 걸 하나도 모르는데 왜 눈물이 나는가.


희망에 대한 영화다. 희망. 몇 달 동안 수백 번씩 속으로 되풀이했던 말. 서럽고 고단할 때마다, 주문처럼, 희망, 희망. 물론 제국으로부터 우주를 구하려는 진 어소의 희망과 이놈의 집구석 나가버리고 말겠다는 나의 희망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진 어소도 레아 공주도 그때의 나처럼 되풀이해 말한다. '희망'이라고. 이 말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눈물 냄새, 눅눅하고 구질구질한 현실의 냄새,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끝까지 더 밝은 쪽을 보려고 발버둥치며 흘리는 땀 냄새가 난다. 희망은 뚜렷한 빛깔도 형태도 가진 적이 없다. 숨이 차서 눈앞이 아득해질 때 시야의 구석에서 아주 잠시 비쳤다 사라지는 섬광 같은 것. 너무 희미하고 연약해서 과연 이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운 것. 하지만 결국 믿게 하는 것. 모든 것을 저주하면서 결국 한 걸음 더 가게 하는 것. 희망은 항상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이미지와 함께했지만 결코 그 이미지 속으로 침몰하지 않는다. 진 어소가 로그 원 대원들에게 "포스가 우리와 함께하기를"이라고 말할 때 끝내 그 희망은 온 우주를 밝히는 빛을 내뿜는다. 아주아주 잠깐이지만, 영원히 우주를 바꿔 놓을 빛.


4.

동생과 붕어빵을 사 먹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결말이 이해가 되냐고 했더니 모르겠단다. 나는 진 어소가 죽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레아 공주를 연기한 캐리 피셔가 죽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죽음은 우리 집에 이미 충분히 많았다. 어쨌든 동생은 진 어소의 작전이 성공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내 동생, 포스가 너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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