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행과 혼돈, 그리고 인간의 멍청함에 대한 이야기. 읽고 있으면 코니 윌리스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감이 잡힌다. 시끄럽고 성가시고 멍청하고 짜증나지만 너무 사랑스러운 것. 그 모든 결점과 어리석음과 때로는 좀 심각한 악덕까지도 오냐 하고 예뻐해주는(하지만 일단 신랄하게 풍자부터 하고 나서)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읽으면서 자연스레 함께 유쾌해진다. (하지만 혐오 유행에 대해서는 날을 세우고 비판한다) 특히 플립은 지금껏 그의 소설에 등장했던 모든 대환장쇼 인물들의 완결판 같았고 하이텍에 대한 묘사는 미국도 퍼킹 관료제는 똑같구나 싶어 슬퍼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 좋은 북유럽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관료제 때문에 고통받는다구...


2.

그리고 코니 윌리스 로맨스 정말 찰지게 잘 쓴다. 두 사람이 존댓말로 실용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대체 왜 설레는 거지.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에서도 둘이서 외계인 가지고 복작복작 하다가 눈 맞아 버리는 과정이 너무 두근거리고 예뻤다. 코니 윌리스의 로맨스 남주인공들은 다 페미니스트일 것 같고 오줌 싸고 손 씻을 것 같고, 오빠 소리는 하지도 않고 영원히 다정하고 일 잘하는 지휘자이거나 과학자일 것만 같다.

3.

중간중간 역사 속의 다양한 유행에 대해 소개하는데, 지금 봐도 멋있는 것도 있었고 아니 이런 걸 왜 했어.. 싶은 것도 있다. 특히 댄스 마라톤, 다리미로 머리 펴기, 머리 위의 해상전투(?)... 같은 걸 보고 있으면, 왜 샌드라가 유행을 질색하는지 알 것 같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걸 나중에 보면 어떨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데, 아마 똑같이 좆같을 것이다..가 코니 윌리스의 의견이고 나도 공감한다.

유행이라는 건 왜 이렇게도 한심한가!!! 라고 사자후를 토하는 구절이 많은데 너무 슬픔의 끄덕끄덕 파티였다... 프로듀스101과 테니스스커트가 흥하는 세계.. 아는형님이 시청률 좋은 세계...

4.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sf 몇 권 읽었는데 사실 아직 감을 잘 못 잡겠다. 어떻게 해야 장르문학이고 어떡해야 순문학이지? 이 소설에는 로봇도 뭣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그래도 코니 윌리스가 썼으니까 sf인가?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는 우주 알이 등장하는데 문학동네 소설상 받았어.. 그럼 그거 순문학이야? 정유정 소설은 맨날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에 서있다는 평을 듣는데 그 경계는 대체 어디야? 분명 전문가 사이에서 논의 이루어진 얘기겠지만 나는 너무 혼란스럽네...

양지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