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로그원을 봤으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본 스타워즈인데 너무 좋아서 좀 놀랐다. 나는 장르와 내용에 상관없이 옛날 영화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욱 공고해졌고. 특히 이건 sf라서 허술한 특수효과나 배우의 외계인 분장이 티가 많이 났는데 그런 게 보일 때마다 좋아서 자지러지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냥 옛날변태가 아닐까.

2.

시간적으로 로그원의 바로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진 어소와 로그원 대원들이 빼돌린 설계도를 레아 공주가 반군에 무사히 전달하고 데스 스타를 공격하는 이야기. 루크는 영웅서사에 수도 없이 등장한 '순진하고 정의로운데 사실 운명에게 선택받은 잘생긴 금발백인'이고, 한 솔로 역시 수백번 우려진 '돈밖에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싸나이 용병'이라 식상했지만, 우리에겐 레아 공주가 있다. 나는 스타워즈를 잘 모를 때부터 레아 공주를 좋아했는데 1. 일단 이름이 '레아' 2. 게다가 공주 3. 양머리+흰옷 여기서부터 반한 것이다. 레아 공주라니 너무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이름 아니냐구요. 게다가 어떻게 발음하면 '레이아' 가 되는데 더욱 최고다.(나는 예쁜 이름을 남들보다 좀 많이 좋아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레아 장군이 된다고 들었는데 너무 늠름하고 위엄있고 멋진 말이잖아.. 그래서 원래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 보니까 그보다 훨씬 더 멋지고 게다가 볼살이 통통해서 귀엽기까지 해버린 것이다. 적어도 내게 이 영화의 재미의 80% 이상은 레아와 알투의 귀여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캐리 피셔에겐 명복을. 그 어머니인 데비 레이놀즈에게도. <사랑은 비를 타고> 본 바로 그 다음날 부고 들었다구.

3.

지금까지 이런 규모의 전쟁영화에서는 어둡고 눅눅하고 인생의 쓴맛 43846년 맛본 수염남의 일그러진 얼굴만 지긋지긋하게 본 나는, 이 영화의 명랑한 분위기에 장말로 놀라버렸다. 아니 정말로 밝고 즐겁고 명랑하잖아! 피도 안 튀기고 인간은 깨끗하게 죽고 비인간(로봇)은 안 죽잖아! 이런 게 있는데 그동안 칙칙하고 잔인한 영화만 봐왔다니! 이렇게.


이것이 내가 요즘 계속 sf만 읽고 있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거의 순문학만 읽어왔는데 읽고 나서 기분이 산뜻하게 좋았던 적은 사실 별로 없었다. 오히려 뾰족하거나 둔탁하거나 아니면 하늘하늘한, 하지만 치명적인 무기로 후드려 맞는 기분이었지. 물론 나는 그 느낌을 좋아하는데(나는 순문학 좋아하는 사람은 다 조금씩은 변태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도) 가끔은 너무 힘들다고.. 게다가 그런 고통이 느껴지는 건 좋은 작품이라는 뜻이기라도 하지, 어떤 건 그냥 장마철 덜 마른 빨래처럼 눅눅하고 안 좋은 냄새가 난다. 물론 장르문학이라고 독자를 정서적으로 패는 작품이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읽고 본 sf는 산뜻하고 랄랄라하고 짜르르할 뿐이었다. 옛날 영화 역시 그 현실과 유리된 느낌이 나를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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