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뒷표지의 책 소개를 읽을 때 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렇군. 또 인류가 멸망해 가는군. 또 방사능이군. 그러니까 원자력 좀 조심해서 쓰래두. 자 이번에는 인류가 어떤 발악을 할 지 한번 보세.

그러나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발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오 위대한 인류, 오오 원대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아니, 그런 이야기를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초점을 맞춘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와 다른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런 너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 사랑 이야기였다. 차갑고 섬세하고 아름답고 절망적인. 낙하하는 눈송이처럼.


2.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보다는 아름다운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소설이다. 아름답다. 너무 흔하게 쓰여서 이제는 거의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이 아름다움이 소설의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으며 사실상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와 셀리아가 몇 년만에 만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전염병이 돌고 사회가 붕괴해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데이비드가 셀리아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인간을 복제한 클론이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인간을 내쫒는 것보다 결코 사소하지 않다. 몰리와 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클론의 사회가 뿌리부터 위태롭게 흔들리면서 내부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과정만큼 중대하다. 아침을 맞는 숲의 고요함, 강물에 비친 햇빛의 반짝임, 아이와 엄마가 처음으로 가는 소풍. 이것들은 쨍하고 냉혹한 현실에 비해 너무나도 무력하고 연약하고,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이들의 무기다. 우리는 모두 다른 개인이고, 그래서 서로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우리가 보는 것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위험하고 비효율적이지만, 그만큼 귀하고 경이로운 일이야.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그게 너희가 우리를 이길 수 없는 이유야.


3.

소설 속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절제되어 있다. 클론이 기존 인간과의 다른 면모를 드러내며 서서히 인간의 자리를 밀어내는 과정은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지면서 더욱 냉혹하고 쨍하게 다가온다. 놀라운 점은 그 목소리로 애절한 로맨스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인물들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거나 아니면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열렬히 사랑하는 상태지만, 독자가 그 사랑에 이입하는 것은 별로 힘들지 않다. 약간 과장된 격렬함이 있고 다른 상황에서라면 오글거렸을 대사도 나오지만 작품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 분위기 때문에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데이비드와 셀리아, 몰리와 벤. 인간복제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들.


4.

마크는 클론 세계의 유일한 인간 아이다. 엄마 아빠인 몰리와 벤을 닮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고, 스스로 생각해낸 장난을 치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조각상을 만든다. 그리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관계라는 건 뭘까. 사실 아프고 피곤하고 감정 소모가 많아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 말 한 마디, 표정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것. 우리를 울고, 소리 지르고, 가끔은 서로를(또는 스스로를) 죽이고 싶게도 하는 것. 최악의 경우에는 정말로 죽이기도 하는. 클론 세계에는 이런 골치아픈 관계가 필요가 없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형제 자매'들은 사실상 하나의 개체로, 별다른 소통이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왼팔과 발가락이 소통하지 않듯이. 형제 자매들이 있으니 친구도 필요 없고, 집단으로 난교를 하니 연인도 필요 없다. 이 공동체에서 '나 자신'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뭐 어떤가. 소외감, 외로움 같은 단어는 그들의 사전에 없다.


마크는 다르다. 마크는 한 명의 사람이고, 그래서 관계를 맺는다. 엄마 몰리를 사랑하고, 숲속의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고, 같은 방을 쓰는 쌍둥이 아이들을 놀려 주고, 하룻밤을 지낸 여자아이를 사랑하고, 배리 아저씨에게 말대꾸를 한다. 그래서 마크는 아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고, 그 감정을 느끼면서 그 누구와도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 동시에 마크는 자신과 관계를 맺은 클론에게도 대체될 수 없는 의미로 각인되고, 결국 그 클론도 다른 클론들과 다른 '어느 누구'가 되게 한다. 이쯤에서 김춘수의 <꽃>을 낭독해야 할 것 같은데...


5.

왜 사람들은 소설과 영화와 다른 모든 예술에서 자꾸만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는 걸까. '아 이대로라면 진짜 지구 망하겠는데'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고,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맨얼굴이 궁금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의 디스토피아는 어둠 속이라서 소중한 것들이 더욱 빛을 내는 곳이다. 부족하고 뾰족한 너. 너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속상하고 피곤하겠지. 하지만 그런 너를 사랑해. 다른 누구와도 다른 바로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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