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영화를 본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한 줄도 못 쓴 이유는 내가 이 영화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첫 장면부터 프란시스에게 빠졌고 영화 내내 그레타 거윅의 시원시원 잘생긴 얼굴과 호탕한 웃음, 누가 보든 말든 신나 날뛰는 춤사위와 무방비하게 드러나는 외로움을 내 것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속 없고 눈치 없고 어딜 가도 환영은 못 받는 프란시스. 표정이 투명해서 사랑도 상처도 숨길 줄 모르고, 자꾸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데 뒤처져 보이기는 죽어도 싫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그래서 여차저차 파리까지 와버렸는데 여기서도 외롭고 잠은 안 오고, 받지 않는 친구에게 계속 전화를 거는 '안 생겨요' 프란시스. 프란시스와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지만 그의 흔들림은 내 것과 닮아 있었고, 흑백 화면 속의 프란시스와 뉴욕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2.

둘도 없는 친구 소피와 잘 살던 프란시스에게 차근차근 시련이 찾아온다. 차근차근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그 '시련'들이 겉보기에 그렇게 엄청나지도 않고 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니면서 조용히 집요하게 프란시스를 구석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친구가 떠나고, 직장을 잃고, 집세를 내지 못하고, 현재는 한심하고 미래는 불안하고, 모두가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은데 물증은 없고. 프란시스는 하던 대로 열심히 밝고 씩씩하게 살아 나가는데 자꾸만 현실이 그를 넘어뜨리고 지나간다. 화도 못 내게 툭, 툭 밀치는 사람들, 장소들. 프란시스의 웃는 얼굴이 더는 자신만만해 보이지 않을 때, 돈도 없으면서 난데없이 파리로 떠나겠다고 선언할 때 관객은 이게 남의 일이 아님을 차차 깨닫게 된다.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길 가겠다는 거야! 생각이라니. 들끓는 생각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떠난 건데. 하지만 아무리 장소를 옮겨도 (영화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외롭고 한심하고, 파리 여행은 또 더럽게 비싸서 돌아오고 나서 한참이나 빚을 갚아야 했다. 힐링 여행 같은 건 없었어. 다 놓고 가도 '나'를 데리고 가야 하잖아. 내가 싫어서 떠나는 건데.


3.

미묘하게 굳어가던 얼굴들.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묻지도 않은 말을 해맑게 늘어놓을 때, 오랜만에 만난 소피에게 반가운 티를 낼 때, 잠시 같이 살게 된 친구에게 싸움 놀이를 하자고 달려들 때. 아 쟤 왜 이러지, 나 쟤 불편한데, 하는 표정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표정이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프란시스, 제발 그 입을 다물어. 저 사람들이 널 싫어하려고 하잖아. 아마 그 장면은 프란시스보다 나에게 더 공포였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게, 또는 그저 좋아하지 않는 게 두렵다. 그 어떤 것보다 효과적으로 나를 무너뜨리는, 애매하게 굳은 표정들. 네가 귀찮아, 반갑지 않아, 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순간 내가 딛고 서 있는 자아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지 실감한다. 다 내 뿌리 깊은 자기혐오 때문이지만 자꾸만 타인을 피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고, 그렇게 점점 외로운 쪽으로 걸어간다. 스스로를 굴 속에 밀어넣고 어둡고 축축하다고 화를 낸다. 다른 나를 만든다. 더 둥글고 그늘 없고 사랑할 만한 나. 그게 나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다가, 누군가의 차가운 (사실 별 의미 없는) 눈빛 하나로 얕은 기만의 지지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다.


4.

하지만 이건 다른 얘기고, 나보다 훨씬 나은 프란시스는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간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프란시스라면 납득이 간다. 멀어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고, 길에서 뛰어가면서 동시에 춤까지 출 수 있는 사람이니까. 프란시스는 배운다. 결국, 그렇게 잘나 보이고 앞서 나가는 것 같던 사람들도 속은 다 똑같구나. 다 그렇게 휘청이고 흔들리고 헤매면서, 그러다 소중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헤어지면서, 그렇게 살고 있구나. 프란시스는 그 배움을 춤 속에 담고, 그가 아끼는 모든 사람이 찾아와 그 춤을 지켜본다. 작은 아파트도 하나 얻는다. 이번에는 혼자 사는 집. 문페에 '프란시스 핸들리'라고 적어야 하는데, 이름이 길어서 공간이 모자라다. 뭐 그럼 뒤는 떼어내지 뭐. 그렇게 생긴 새 이름 '프란시스 하(Frances Ha)'. 짧고 시원한 웃음 같은, 또는 신이 나서 내지르는 기합 같은 이름. 앞으로도 수많은 '장소'를 만나겠지만, 그때마다 하 하고 한번 웃고 지나가기를.


5.

영화의 모든 장면을 끌고 가는 그레타 거윅. 연기 잘하고 잘생긴 배우라고만 생각했는데 각본에도 참여했구나. 재능 많은 사람.



포스터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사실 화면이 다 예뻐서 아무데나 캡처해도 성공적이었을 듯.
포스터 너무 아름답다. 그런데 사실 화면이 다 예뻐서 아무데나 캡처해도 성공적이었을 듯.
벤지랑 잘되길 바랐었는데!!
벤지랑 잘되길 바랐었는데!!
가장 짠했던 장면.
가장 짠했던 장면.
춤추면서 달리는 프란시스 너무 좋다.
춤추면서 달리는 프란시스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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