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싱~~~잉 인더 레~~인"으로 유명한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스탠리 도넌 감독 작품 <화니 페이스(1957)>. funny face, 즉 웃기게 생긴 얼굴을 말하는데 그 웃긴 얼굴의 주인공이 오드리 햅번이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못난이 취급 받는 영화나 드라마는 하도 많이 봐서 익숙하지만 그래도 무려 오드리 햅번이 "난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하는 영화를 진지하게 몰입해서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도 "그래 네가 예쁜 건 아니지~"하고 있으니 속이 터질 수밖에. 그래도 이 제목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다소 뻔하고 답답한 스토리임에도 햅번의 얼굴 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 심지어 얼굴 보다가 자막을 못 보기까지 했으니 어떤 의미로는 '화니 페이스'가 맞을지도.


2.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이다. 책밖에 모르던 똑똑하지만 순진한 아가씨가 잡지사 사진가의 눈에 띄어 멋지게 변신하고 유명한 모델이 되는. 그리고 그 아가씨는 사진가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가 바로 프레드 아스테어다. 프레드는 늘 그렇듯이 여기서도 말끔하고 다정하고 춤도 잘 추는데, 문제는 이 영화를 찍을 때 그가 무려 50대 후반으로 상대역인 햅번보다 서른 살이나 많았다는 거다. 당연히 집중이 안 될 수밖에 없고 게다가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에서 프레드는 줄곧 진저와 함께였기 때문에 약간 '아저씨 여기서 혼자 뭐 하세요...?' 같은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오히려 잡지사 사장 매기가 프레드와도 햅번과도 더 잘 어울린 듯. 뜻밖의 케미꾸러기 사장님.

너무.... 부녀 같다구요.....
너무.... 부녀 같다구요.....
가운데 이분이 사장님. 사장님이 (본인은 회색 옷 입고) "모든 것을 핑크로 바꿔라~~" 할 때가 영화에서 가장 유쾌하고 화면도 감각적이다.
가운데 이분이 사장님. 사장님이 (본인은 회색 옷 입고) "모든 것을 핑크로 바꿔라~~" 할 때가 영화에서 가장 유쾌하고 화면도 감각적이다.


3.

뻔하다는 것 말고도 이 영화의 스토리에는 단점이 많은데, 무엇보다 주인공 '조'의 성격이 종잡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야무지고 말 잘하는 책방 직원이던 그가 파리에 가면서부터 약속과 책임감을 돌 보듯 하는 소위 '민폐'로 변해버린다. 프로스트레 교수와 감정 이입론에 집착하는 조의 모습은 흡사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 같고, 아무리 그가 오드리 햅번의 외모를 가졌다 해도 관객들은 그를 사랑스러운 인물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 딕이 영화 초반에 조를 대하는 방식도 너무 무례하고 일방적이었다. 한국 드라마 보는 줄 알았다구.


4.

뮤지컬 영화로서도 조금 아쉬운 구석이 있었는데, 귀에 쏙 박히는 노래가 없기도 했고 햅번과 프레드가 함께 추는 춤도 진저와 프레드처럼 폴짝폴짝 스텝스텝! 같은 맛은 없었다. 영상은 세련되었지만 초반에 사장님이 <think pink!>를 부를 때 빼고는 <사랑은 비를 타고>와 같은 독특한 아름다움은 없었다. 특히 의아했던 건 영화 속 파리가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는 것. 국내 개봉 제목이 <파리의 연인>일 만큼 파리는 중요한 배경이고 세 주인공이 신이 나서 봉쥬, 파리! 하고 노래도 부르는데 정작 그 파리는 지자체에서 만든 관광명소 광고처럼 하나도 안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감독의 의도인가 의심될 만큼 별로 안 가고 싶어지는 모습의 파리...


하지만 봉쥬 파리! 이 노래는 엄청 귀여웠다. 가사도 귀엽고 주인공들도 귀엽고 
하지만 봉쥬 파리! 이 노래는 엄청 귀여웠다. 가사도 귀엽고 주인공들도 귀엽고 


<파리의 연인>으로 개봉한 국내 포스터. 이런 옛날 홍보문구 너무 좋다. 세계최고의 횃션 모델 오-드리 헵번!
<파리의 연인>으로 개봉한 국내 포스터. 이런 옛날 홍보문구 너무 좋다. 세계최고의 횃션 모델 오-드리 헵번!

4.

지금까지 계속 흉만 보고 있는데 그럼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인가. 오드리 햅번이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게 햅번은 짧은 영상 속에서 <문 리버>를 부르는 미인이자 유니세프 홍보대사 같은 존재였는데. 이 영화로 나는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자막 읽는 것도 잊고 넋을 놓고 말았다. 딕에게 키스 당한 후 모자를 들고 노래할 때는 어두침침한 책방이 환해지는 것 같았고 파리의 카페에서 갑자기 필 받아서 막춤 같은 모던댄스를 출 때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영화 자체도 약간 햅번에게 이것저것 입혀보면서 즐거워하는 인상이었다. 기왕 오드리에게 모델 역할을 시켰으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역할을 다 입혀보자!! 하는 게 느껴지는.. 관객도 보면서 즐거웠다.


예쁘다 흑흑흑흑흑
예쁘다 흑흑흑흑흑
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
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흑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여기서는 둘이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 여기서는 둘이 잘 어울렸다.

5.

스탠리 도넌 감독은 '거만하고 천박한 톱 여배우(모델) vs 순진하고 신선한 아가씨' 이런 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가.. 당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식상한데.(그렇지만 지금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제발..) 그리고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리나 역의 배우가 여기서도 잠깐 나온 것 같은데 헷갈리네.. 목소리는 똑같은데.

이 배우. 이 배우도 진짜 예쁘다.
이 배우. 이 배우도 진짜 예쁘다.

6.

오드리도 프레드도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이지만 나처럼 영화를 통해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50년 동안 미의 기준이나 춤을 보는 안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이 영화를 찾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속 생겨나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리고 샘 레벤슨의 시를 오드리의 말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계속해서 생겨나겠지...

촬영현장인가, 오드리 사다리 잡고 있는 거 되게 귀엽네..
촬영현장인가, 오드리 사다리 잡고 있는 거 되게 귀엽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부분은 오프닝 크레딧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부분은 오프닝 크레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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