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좋아하지 않던 시절의 기억은 없다. 내가 존재를 자각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또 좋아했다. 이해도 못 하면서 국어사전을 책처럼 읽던 일곱 살은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알라딘 장바구니를 채우는 스무 살이 되었다. 수능을 며칠 앞두고도,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선생님 수업시간에도, 가장 어둡고 추운 날에도 멈추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읽어온 책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본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2.

오드리 니페네거의 그래픽 노블 <심야 이동 도서관>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어느 날 밤 길모퉁이에 서서 알렉산드라를 기다리는 트럭 한 대. 느긋하게 앉아 신문을 읽는 사서, 시끄럽게 울리는 팝송. 순서 없이 뒤죽박죽 꽂힌 책, 책, 책들. 모두 그가 읽은 책이다. 시리얼 박스부터 전화번호부까지, 그가 읽은 모든 것이 이 도서관에 모두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후 오랫동안 알렉산드라는 그 '심야 이동도서관'을 잊지 못하고 찾아다닌다. 나는 그의 갈망을 내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읽은 책. 나의 세 살, 열한 살, 열아홉 살을 함께한 책. 나를 위로한, 웃고 울게 한, 일으켜 세우고 넘어뜨린 책. 한 번 읽고 잊은 책, 거듭해 읽으면서 점점 넓어지던 책, 반대로 점점 좁아지면서 내가 자랐음을 알게 한 책. 내가 읽은 책은 내 선생이고 벗이고 인생이었다. 그들이 어두운 트럭에 모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 역시 알렉산드라처럼 그곳에 영원히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3.

심야 이동도서관의 방문은 알렉산드라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고, 사서가 되고, 도서관장이 된다. 만족스러운 삶이지만 그 도서관은 '그의' 도서관이 아니므로 끝내 완벽해질 수는 없다. 결국 그는 그만의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여기서 좀 당황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아무리 그곳이 좋아도 난 자살까지는 안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택하고 소설도 그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양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혹시 몰라서 손목도 그었습니다." 하는데 솔직히 좀 무서웠다. 주인공과 소설 모두 '책이 중요하지 인생 따위 별거냐' 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야 그건 심했다.. 싶다가도 이해가 된다. 사실 지금 내 상황이 그렇거든. 인생은 18년이나 살았으니까 이제 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고 싶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거야.


4.

그리고 그는 정말로 죽음을 통해 꿈을 이룬다. 자살의 윤리적 문제점.. 알렉산드라의 삶.. 이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고 "그래서 알렉산드라는 행복했습니다*^^*" 하는데 너무 산뜻하고 좋았네. 그는 자신의 도서관을 잃었지만 또 다른 아이의 도서관지기가 되어 그의 인생을 함께하게 된다. 아이와 알렉산드라는 평생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은 사랑보다 더 단단하게 묶이겠지. 책이 아이의 삶과 함께 가겠지.


5.

이 이야기는 독자의 수만큼 충분히 길어질 수 있다. 내게도 그런 도서관이 있다면 어떨까.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없이 많은 인터넷 소설을 읽었는데 그건 어떤 형식으로 저장될까. 트위터 타임라인은 어떻고. 외국 영화 자막도 '읽은' 것으로 간주될까. 빌딩의 광고판 같은 커다란 건 어떻게 보관하지. 또는, 내가 사서가 되었는데 내 손님이 일베 게시판 같은 걸 읽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서는 오로지 손님이 읽은 책만 읽을 수 있나. 사서는 지구의 모든 문자를 이해할 수 있나. 아니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손님을 받나.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의 마지막 사람은 어쩌나. 하루종일 이런 질문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고 답을 하나하나 만들며 나만의 도서관을 세워나가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같이 읽고 수다 떨면 좋을 이야기. 같이 읽어요. 나한테 말해 주세요. 당신의 심야 도서관. 당신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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