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전거를 좋아하게 된 건 중학교 3학년 때. 당시 짝사랑하던 남자애를 무작정 따라하다가 그애보다 자전거를 더 좋아하게 된 거다. 지금 그애의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자전거는 바로 어제도 한 시간동안 바람과 싸우면서 타고 왔다. 왜 바람은 내가 지치는 그 순간 불기 시작하는 걸까.


2.

너무 좋아서, 좋은 마음을 표현하기에 내 언어가 짧고 부족함을 통감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하루종일 침대에서 꼼지락거리기, 그리고 강가에서 자전거 타기.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고 있으면 꼭 하늘을 헤엄치는 기분이 든다. 소란하던 머릿속도 깨끗해지고 '좋다좋다행복하다지금죽고싶다' 같은 생각만 보글보글 하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날아가 버린다. 그러다 좀 힘들어서 '이제 돌아갈까' 하면 이미 늦었다. 왠지 갑자기 거세진 바람과 힘을 잃고 흐늘거리는 다리와 싸우며 (지금까지 흥겹게 달려온 길을) 비틀비틀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게 에너지가 좀 남았을 때 돌아가면 되는데 한창 신이 날 때는 그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렇게 생고생을 하고 돌아오면 온몸이(특히 엉덩이가) 땀범벅이고 피곤하고 배가 고프고, 아 내일 또 가야지, 하는 것이다.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거야.


3.

험하게 넘어져서 바지 양쪽 무릎이 다 찢어졌을 때도, 품에 안고 있던 패딩을 떨어뜨리고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그대로 깔고 지나갔을 때도(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자전거를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게 자전거는 '즐겁다'와 같은 말이었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아 이건 전부 요즘 자전거를 못 탔기 때문이다..' 하면서 무작정 페달을 밟았다. 내 어두웠던 고3 시절에는 자전거 바퀴가 맛이 갔다는 사실도 큰 공헌을 했다. 수능이 다가올 무렵에는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어서 (정말로) 울 뻔한 적도 있다.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것도 새 자전거. 어딜 가든 예쁜 자전거만 보이면 자세히 보게 된다. 지금 자전거도 멀쩡한데도.


4.

로버트 펜의 <자전거의 즐거움>은 그런 '나만의 자전거'의 로망을 직접 실현하는 책이다. 저자는 '오직! 나만을 위한!! 완벽한 자전거!!!'를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들여 전세계의 장인(?)들을 만난다. 그 모습이 솔직히 팔자 좋아 보여 눈꼴시렵기도 하고, 열정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많이 부럽다. 나도.. 나도 세계여행.. 나도 수제 자전거...


5.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지루해져서 중간에 그만뒀는데(자전거 타는 것만 좋아하지 구조는 잘 모른다), 서문에 너무 맘에 드는 부분이 있어 옮겨 본다.


1893년 9월, 테시 레이놀즈(Tessie Reynolds)는 남자용 자전거를 타고 브라이튼과 런던을 왕복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긴 채찍과 무릎 아래에서 짧게 동여맨 헐렁한 나팔바지 같은 이른바 '합리적인 복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직도 폭이 넓은 치마, 코르셋, 속치마, 긴소매 셔츠, 꼭 끼는 셔츠 깃을 착용하고 자전거를 타던 시절이었다. 이 사건은 여성들이 실용적인 옷차림을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되었다. (중략) 1894년 6월엔 애니 런던데리(Annie Lononderry)가 여분의 옷가지와 진주 손잡이가 달린 리볼버 권총을 들고 보스턴을 출발해 세계 일주를 떠났다.


역시 여자로 태어났으면 리볼버 정도는 들고 자전거 세계일주 정도는 해봐야지. 멋지다.

와 이사진 멋지다
와 이사진 멋지다
양지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