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왜 새벽 두 시까지 독립영화관을 보았나

도망치는 게 아녜요, 비상하는 거예요.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거예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부모 앞에서 폴라는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하는 부모님, 슬프지만 떠나야 해요. 이제 당신의 아이는 없어요. 딸의 눈빛, 딸의 표정, 햇볕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던 머리카락. 이런 것들로 부모는 폴라의 노래를 듣고, 자신들은 영원히 알 수 없을 세계로 딸을 떠나보낼 용기를 낸다. 에릭 라티고 감독의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보면서 나는 나의 가족을 떠올렸다. 도망치는 게 아녜요, 비상하는 거예요, 나 역시 그렇게 말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거짓말이었으니까. 도망치는 거였으니까. 나에게 이 영화는 '그렇게 될 수도 있었던' 슬픈 가능성이었다.


2. 나는 왜 이 영화를 웃으면서 보지 못했나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벨리에 가족. 엄마, 아빠, 동생 모두 청각장애인이고, 딸 폴라만이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다. 짝사랑하던 가브리엘을 따라 학교 합창부에 들어간 폴라는 자신이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가족들은 폴라가 파리의 합창학교 오디션을 보는 것을 거세게 반대한다. 숱하게 봐왔던 성장영화 스토리인데(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히 '빌리 엘리어트'), 그 빤함 속에 기어이 마음을 툭 치고 가는 게 있다.


폴라의 노래를 극구 반대하던 부모가 학교 합창 무대를 찾는다. 폴라와 가브리엘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듀엣곡을 부르고, 관객은 숨죽여 듣고, 벨리에 가족은 지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영화 안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다.


그게 벨리에의 세계다. 침묵. 방긋방긋 거리는 입모양. 정중한 조롱과 멸시. 네가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정말 많이 울었다. 우리는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싫었거든. 폴라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폴라가 들을 수 있어도 듣지 않는 삶을 살기를,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어 평생 함께하기를 바랐다. '노래를 하겠다'는 폴라의 말은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몇 달 전 거의 같은 이유로 매일 울고 싸우고 난리를 피웠던 나는 그 장면을 절대 심상하게 볼 수 없었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걸 해줬고 너에게 얼마나 의지하는데 어떻게 가족을 떠날 생각을 할 수 있냐고 그들은 말했고 나는 진심으로 죽고 싶었다. 이들은 정말로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가, 정말 내 아픔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가, 내가 죽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나는 너무 힘이 들었고, 그래서 분명 나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을 그들의 마음을 아주 의도적으로 모른척했다. 그 결과 어쨌거나 독립을 하게 됐으니 후회는 없지만, 나와 그들은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고 다시는 예전으로(그때도 결코 좋지 않았지만)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폴라와 벨리에 가족은 우리 같은 바보짓을 하지 않는다. 그날밤 아버지는 폴라의 목에 손을 대고 노래를 청한다.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는 노래를, 그렇게 그는 '듣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벨리에 가족은 오디션을 위해 파리로 향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순수한 기쁨으로 볼 수 있었더라면.


3. 나는 왜 폴라의 재능이 생소했나

구질구질한 개인사를 꺼내지 않아도, <미라클 벨리에>는 이미 우리에게 먼 천국 같은 영화다. 한국사회의 아픈 구석을 (의도치 않게) 해맑게 꼬집는 명랑한 1세계 영화.


주인공 폴라를 보자. 폴라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그가 아이돌이 되고자 했다면 '국민 프로듀서'에게 살 좀 빼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폴라는 예쁘고 보기 좋은 몸매를 가졌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면 '미친 가창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떨어졌을 것이다. 폴라는 아주 예쁘지만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고 노래도 잘 하지만 천상의 목소리는 아니다. 아직 다듬어지고 완성되지 않은, 서툴지만 힘이 숨어있는 목소리. 한국에서라면 폴라가 설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은 학교 축제 무대 정도였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폴라는 파리 합창학교 오디션에 합격한다. 외모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칭찬이든 지적이든 단 한 마디도.


아이들이 루브르 박물관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모나리자' 같은 명작을 따라 그리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재능은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은 시간을 두고 자라나고 노력에 따라 얻어집니다. 그렇게 말하던 어른의 별 당연한 말을 한다는 표정. 'K팝스타'에서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는데, 왜 끌리지가 않죠?" 같은 말을 듣고 자란 나에게 폴라의 목소리는 미숙하고 불안하지만, 토마슨 선생님에게 그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던 거다. 폴라는 노래를 처음 하는 거니까 실수하는 게 당연하지. 선생님이 폴라에게 "네 안에는 재능이 있어!"라고 말할 때 그 '재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달랐다.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폴라들이 '나는 특출난 재능이 없어'라고 생각하며 노래방 스타에 만족하고 있을까.


4. 나는 폴라 부모님이 왜 그렇게 좋았나

폴라의 부모님은 청각장애인이다. 그리고 당당하고, 야망 있고, 똑똑하고, 다혈질이고, 시끄럽고, 주책 없고 재미있다. 좋은 부모이자 성실한 농장 주인이자 공동체의 신임과 지지를 받는 마을 주민이다. 나는 한국 영화에서, 아니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이렇게 많은 캐릭터를 가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장애인은 '나눔의 행복'같은 프로그램에서 한 번에 2000원인 전화 후원을 호소하거나, 비장애인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욕설의 의미로 사용되거나, 대부분의 경우 아예 존재 자체를 삭제당한다. 장애인은 고속버스 한 번 타는 것조차 불가능하고,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는 시위조차 뉴스에 나오지 못한다. 영화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이라는 정체성 하나에 가려져 더 이상의 특징을 갖지 못한다. 등장인물 소개. 김철수: 청각장애인이다. 끝.


지지 벨리에와 로돌프 벨리에는 그렇지 않다. 듣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수많은 특징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들을 '청각장애인 부부'라고 부른다면 그들은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차라리 '시장 후보 부부'라고 부르는 게 그들에게는 더 어울릴 것이다. 장애인이지만 장애 이상의 특징을 갖고 당당하고 사회활동도 잘 하는 사람들.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사람들. 한국영화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볼 수 있을까. 서글프다.


5. 왜 캉탱은 마틸드에게 수화를 가르쳐주었나

프랑스에서는 영화 <아가씨>가 12세 관람가다. 영화 속 섹스신이 두 인물의 합의 하에 이루어졌고 포르노적으로 소비되는 대신 해방적 의미를 가졌기 때문. 당연히 한국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로 개봉했고 그때 나는 미성년자라 보지 못했는데, 몰래 보고 온 친구에게 감상을 묻자 딱 한 마디 했다. "더러워."


바로 이 차이가 아닌가 싶다. 한국과 프랑스가 청소년의 성을 다루는 방식. 청소년이 성을 다룬 그 어떤 컨텐츠도 합법적으로 소비할 수 없는 나라. 동시에 소아성애적 컨텐츠가 하나의 '컨셉'으로 소비되고, 여자 아이돌이 짧은 체육복 바지를 입고 멍한 표정을 짓는 사진이 앨범 자켓이 되는 나라. 청소년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건 죄악시하면서 성적 대상화는 누구보다 열심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나는 이 이중성을 진심으로 증오하는데, 그러면서도 내가 이 논리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서 절절히 깨달았다. 계기는 폴라 동생 캉탱.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나이는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극중에서 폴라가 초경을 하는 걸로 보아 14~15세 정도로 추정할 뿐인데,(실제 생리를 시작하는 연령은 더 어리지만 대사를 볼 때 폴라는 조금 늦게 초경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극중의 폴라는 적어도 16살은 되어 보여서 나는 좀 당황했었다. 역시 서양 애들은 조숙한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폴라 역의 배우 '루안 에머라'가 개봉 당시 19살이었다. 아니 그럼 좀 미스캐스팅 아닌가요.


한국에서 15살 정도의 청소년은 (대부분) 몰래 야동을 보거나 (소수는) 몰래 섹스를 한다. 어쨌든 그 나이에 성과 관련된 뭔가를 하는 건 다 불법이다. 프랑스의 청소년은 어떨까. 로돌프가 시민들을 상대로 질의응답을 하는 동안 캉탱(13~14살 추정)이 갑자기 쓰러진다. 원인은 라텍스 알레르기. 폴라 친구 마틸드와 섹스하다가 콘돔에 알레르기를 일으켜 버린 거다. 그걸 알게 된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정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마틸드도 친구 동생이랑 섹스하다 걸린 게 좀 창피할 뿐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못이 아니니까. 너희 둘이 좋아서 섹스를 했는데 하필 알레르기가 있었구나. 끝. 이런 상큼한 반응이라니. 등장인물이 상호 합의와 존중을 바탕으로 섹스하고 거기에 당당한 영화라니. 이렇게 교육적일 데가. 아니, 비꼬는 게 아니다. 청소년이 리벤지 포르노로 성을 배우는 나라에서 알레르기로 쓰러질지언정 콘돔을 포기하지 않는 소년을 보면, 당연히 부러울 수밖에.


6. 결국, 벨리에 가족 이야기

음악영화라기보다는 훌륭한 가족영화였다, 고 트위터에 썼는데, 알고 보니 이 영화의 원제목은 La famille Bélier, 벨리에 가족이다. 그래, 벨리에 가족. 폴라는 가족을 떠나는 게 슬프지만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거니까. 아프지만 상처 받지는 않는, 깨끗하고 따뜻한 이별. 폴라는 파리에서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이고, 가족들은 그의 노래를 마음으로 들으며 늘 그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리는 폴라의 환한 미소에서 영화는 끝난다. 폴라가 가수로 성공할지, 로돌프가 시장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벨리에 가족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야. 서로가 있는 한.


7. 그밖에 사소한 이야기

사실 줄거리는 상당히 뻔하다. 속으로 '이렇게 되겠지!' 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 '억울한 사정으로 파리에서 시골로 내려온 선생님'이 '제자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훈련시켜 '파리의 오디션'에 내보내는 이야기. (그리고 그 선생님이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 그런데 이게 실화라는 걸 보면 역시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재밌는 것 같고 그런다. 그밖에 아쉬웠던 건 폴라의 부모님이 '과묵하고 든든한 아버지'와 '호들갑스럽고 예민한 어머니' 클리셰를 그대로 따랐던 것. 폴라의 짝사랑 가브리엘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

캉탱 역의 배우 '루카 겔버그'의 나이가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봤지만 끝내 알 수 없었고 '섹시한 한국 여성과 데이트하세요' 이런 광고만 보았다. 아이고 프랑스 사람들아...

아이고 포스터 못 만든다...
아이고 포스터 못 만든다...
항상 티저 포스터가 더 예뻐...
항상 티저 포스터가 더 예뻐...
현지 포스터 너무 귀엽넼ㅋㅋㅋㅋ
현지 포스터 너무 귀엽넼ㅋㅋㅋㅋ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이 장면 좋았다. 반짝이던 머리카락.
이 장면 좋았다. 반짝이던 머리카락.
폴라 웃는거 너무너무 예쁘다!!
폴라 웃는거 너무너무 예쁘다!!
촬영장인갘ㅋㅋ 귀여웤ㅋㅋㅋㅋ
촬영장인갘ㅋㅋ 귀여웤ㅋㅋㅋㅋ
이 소의 이름은 '오바마'. 상징하는 게 많은 소(?)다.
이 소의 이름은 '오바마'. 상징하는 게 많은 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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