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에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머리가 묵직하고 정신이 뻐근하지만 나쁘지 않은 피곤함이다. 조금씩 조금씩 빨빨빨빨 돌아다니면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이건 싫어도 내 거야, 이건 아무리 갈망해도 영원히 내 것이 아니야, 이건 내가 좋아하는 거고 앞으로도 내 옆에 있어줄 거야, 이런 것을 배운다. 스무살 나는 열아홉살 나와 같으면서 다르다. 여전히 폐쇄적이다, 그러나 이제 초면의 사람과 제법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여전히 그늘을 좋아한다, 그러나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서 춤도 춘다. 여전히 글을 못 쓴다, 하지만 이제 낯선 도시의 24시간 카페에서 글을 쓴다. 나는 이제 내가 어디로 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섰지만 정작 뭘 선택할지 결정하기는 아직 아직 멀었다. 내 스무살은 이렇다, 드라마에 나오는 파란 청춘도 아니고 소설 속의 방황하는 영혼도 아니다. 그저 열심히 꼼지락거리면서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말을 배우고 까먹고 바보짓을 한다. 사실 좀 시시하다. 나도 마감이나 교육봉사 말고 눈부신 청춘의 어떤 것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것도 뭐 아주 나쁜 것 같지는 않다. 3월의 나는 너무 지치고 우울했는데 4월의 나는 좀 명랑해졌고 난 그런 내가 너무 대견하다. 이런 글을 많이 써둘거다, 왜냐면 다시 바닥 없는 물속을 걷는 기분이 들 때가 올 거고 그럴 때 붙잡을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날 착실하게 챙길 거다. 내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지킬 거다.



인생 진짜 모르는 일이다, 나는 금요일 밤까지도 내가 이 시간(일요일 새벽 세시)에 경기도의 한 사우나에서 좀 취한 채로 모르는 사람들과 자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요즘 모든 일이 이런 식이다. 잘 모르는 남자애들이랑 학교를 반바퀴 돌고, 별로 안 친한 언니들이랑 벚꽃을 보러 가고 체육실기 전날 밤 술을 마시고 이런 일들은 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고 그러나 재미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제야, 스무 살에야 세상이 조금 틈을 열고 내가 안을 들여다보게 허락해준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내가 오늘 본 휘황찬란한 한밤의 노래방 조명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내가 오늘 잘 모르는 사람과 깔깔 웃으면서 술을 마셨다고 내가 그전보다 크게 나은 사람이 될 리가 없다. 그러나 생에는 분명 이런 얼굴도 존재한다, 그리고 보통 이런 얼굴을 젊음이라 부른다. 나는 지난 한달간 이 얼굴은 평생 내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정작 마주한 그 얼굴은 생각보다 무해하고 다정하다. 나는 솔직히 겁이 난다, 인간이 그렇게 오래 사는 것운 지구와 인류와 나와 미래에게 모두 너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안산의 찜질방에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섭지 않다. 나는 자꾸 배운다, 나는 내가 동경하는 성숙하고 멋진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자주 자학의 골짜기를 굴러다닐 때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까지 한심하고 답 없는 인간도 아니다. 물론 이 연약한 교훈은 내가 다음에 발이 걸리는 순간(아마 머지 않을 것이다) 바로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은 젊으므로(그리고 지금 좀 취했으므로) 이런 변덕과 자기혐오도 젊음의 다른 반짝임이라고 믿어버려야겠다. 지금 막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결론은 그냥 오늘 재밌었다는 거다, 그리고 내게는 이런 시시한 문장이 너무 중요하다. 나는 계속 밝고 환하고 시끄러운 면만 보고 싶다. 왜냐면 내 것이 아니니까, 나는 이렇게 뿌듯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낸 순간에도 그 사실을 아니까. 그리고 그 사실과 싸울 거니까.




영문도 모른 채 슬퍼하다가 일어났잖아. 얻어맞은 것처럼. 슬픈 꿈처럼.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짖궂은 미소와 노란 햇빛, 반짝이던 카메라 렌즈와 둘 곳을 모르던 내 눈빛, 이런 것들, 아직 여기 있는데, 그것만 딱 남기고 사라졌잖아. 나는 여기 있는데. 여기는 쨍하고 일교차가 좀 크고 모든 게 좀 무서울만큼 명징한데. 날 보고 웃던 너 -그때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았어 그치?- 그런 것은 여기는 없어, 난 꿈의 가장자리를 하릴없이 붙들어 보는데, 아니 이게 아닌데. 이런 게 아니었는데. 너는 부끄러울만큼 투명하게 나를 펼쳐서 바닥에 늘어놓고 내려다봐. 너는 입이 없으니까 네 대사는 내가 칠게. 괜찮아. 이것도 난 괜찮아. 이런 -너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난 못 본 척할 거야- 지저분한 것들도 난 좋아. 그래그래 좋아. 노란 햇빛이 반듯하게 앉고. 고양이가 졸고. 너는 거기 그렇게 있어줘. 이미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다 사라진 걸 알고 있어. 그래도 모른척하고 여기 있어줘. 계속 말해줘. 현실엔 없는 다정함으로. 두 번은 없을 다정함으로.



다정하고 슬픈 것에 대해 생각했다. 늦겨울의 햇빛 같은 것. 무덤가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같은 것. 흰 털이 콧수염과 목도리 모양으로 난 검은 고양이였다. 멋쟁이 고양이가 죽은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마 고양이는 자기가 멋지다는 것에도 자기가 사는 곳에 수만 명이 죽어 있다는 사실에도 아무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내가 자기를 눈물겹게 부러워한다는 것에도. 내가 쳐다보건 말건 고양이는 귀를 쫑긋거리며 햇살을 받으며 졸고, 배가 주황색인 작은 새가 앉았다 가고.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여기 산 사람은 다 죽어버리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으면. 빈 무덤과 땅에 쌓인 시체에 햇살이 닿고 꽃이 피고 고양이가 돌아다녔으면. 이번에는 살아난 죽은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워했으면. 똑같이 당해봐야지. 비참하고 시끄럽고 구질구질한 것. 남의 삶을 통째로 북 찢어가놓고 자기들만 깨끗하게 사라지면 그만이지. 어디 우리도 그 좋은 거 해봅시다. 목에 꽃 걸고, 햇빛 받고, 고양이나 보면서 죽어 있는 것. 아무것도 없는 것.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할 슬픔의 빚 같은 게 있고 아직도 그 빚이 한참 남았다는 걸 떠올리면 삶이 거대한 피로와 슬픔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그 악다구니. 토사물과 눈물 방울. 반짝이던 머리카락. 지긋지긋하고 아름다운 것들. 여기서 내려줘. 난 쉬다 갈래. 아니 아무데도 가지 않을래. 내려줘. 난 빠질래. 악단의 소음에서. 죽은 꽃의 색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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