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제 린저의 소설에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달에 홀로 있는 것처럼 외롭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걸 읽은 후 내게 외로움은 달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따로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외로움이란 어둡고 창백한 달에 앉아서 지구의 축제와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일과 같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건 썩 나쁘지 않은 일 같았다. 달에서 보면 사람들의 험악하거나 비굴한 표정도 안 보일 것이고 비명소리도 달까지는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별로 겁내지 않았는데, 살아 보니까 우아하게 달에 앉아 외로워하는 일은 몇 번 없고 시끄러운 악다구니 지구에서 비참하기만 하더라. 아직도 가끔 달을 보면 거기서 외로워하는 어떤 사람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를 부러워한다. 외로움이란 얼마나 희고 멀고 깨끗한 말인지, 꼭 달처럼, 그리고 현실은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불빛

지금은 죽은 사람이 살아있을 때였으니까 열한 살 전이다. 주말이면 나랑 엄마랑 아빠랑 동생들이랑 차를 타고 영암 할머니 집에 갔었다. 돌아오는 길은 늦은 밤. 뒷자리의 엄마와 동생들은 잠들고, 운전석에 앉은 아빠는 말이 없고 어렵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창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온통 깜깜해서 내 얼굴밖에 안 보이고. 험악한 표정의 나무가 달려 지나가고. 어쩐지 무서워서 꼭 울 것 같을 기분이 되었을 때 광주 시내에 들어섰고 눈앞에 빛의 바다가 펼쳐졌다. 반짝반짝 불빛 물결. 기껏해야 아파트와 모텔 불빛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차 안이 환해지고, 잠에서 깬 엄마가 와 예쁘다, 중얼거리고,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서 잠이 들었고 얘는 왜 집에 다 와서 자냐고 한소리를 듣곤 했다.

십년 전 일이다. 그동안 한 사람이 죽었고 나머지 몇 사람은 죽고 싶었다. 나는 이놈의 집구석 나갈 수 없으면 죽어 버릴 거라고 울면서 말해서 또 몇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이제 그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가끔 그 불빛들이 떠오른다. 영원히라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던 그 밤의 불빛들. 그리고 그 불빛을 같이 바라보던, 순진하고 행복했던 나의 가족.


오늘 '씀:일상적 글쓰기'라는 어플을 다운받았다. 친구가 하는 게 재밌어 보여서. 근데 진짜 좀 재밌네. 오늘 두 개 썼는데 여기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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