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벚꽃으로 상징되는 봄의 어떤 이미지들-가볍고 예쁘고 과시적인-이 싫어서 해마다 그 흐름에 탑승하지 않으려 애써왔는데 성공한 적은 없다. 어쨌든 나는 해마다 벚꽃을 보러 갔고 신나 날뛰는 사람을 수백 명 보았고 그때마다 아름다움의 과잉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이렇게 찬란하고 흐드러지고 환할 수가 있지. 어떻게 이렇게 눈부신 것이 흔하게 널려 있을 수가 있지. 아름다움은 헤프고 과도했고 그를 보는 사람들의 미소와 행복도 넘칠 듯 흘렀다. 나는 혼자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예쁜 게 한꺼번에 쏟아져 버려도 되는 걸까. 봄바람, 벚꽃 비, 웃음소리, 행복, 이런 것들, 귀하고 소중한 것들이 이렇게 음미하고 간직할 틈도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져도 되는 걸까. 일주일에 한 그루씩만 꽃이 피어서, 일 년 동안 계속 계속 벚꽃을 볼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축복처럼 꽃잎이 쏟아졌고 곧 모든 게 꿈이었다는 듯이 여름이 왔다.

늘 그딴 식이다. 행복은 행복인 줄도 모르고 순식간에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소나기처럼 퍼붓다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건 끈적이는 손과 굳은 얼굴들. 좋은 건 왜 항상 순간일까, 더이상 불평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최선을 다해 기억한다. 세상을 덮을 듯,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을 네게 주겠다는 듯 펄펄 내리던 그 봄의 벚꽃 비.


오랫동안

몇년 전 아빠와 막내가 손을 잡고 걷는 걸 뒤에서 쳐다보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터진 적이 있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면서, 소리를 내면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니까 입을 막고 줄줄 울면서 걸었다. 그때 선명하게 알게 됐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마 평생 아프겠구나. 내가 평생 갚아야 할 슬픔의 빚 같은 게 있어서, 그걸 다 갚을 때까지 나는 결코 완전히 놓여나지 못하겠구나. 그걸 깨닫고 첫 느낌은 좆같다는 거였다. 나는 밝게 -아니면 적어도 밝은 척은 하면서- 살고 싶었다. 나는 스무 살도 안 먹은 나이에, 사람 뒷모습만 보고 울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여기 있으면 슬프고 아프니까 도망치고 싶었고 다 던져 버리고 싶었는데, 그 징글징글한 사람들을 보고 울어버린 그 순간 완전한 도망은 불가능하고 결국 난 슬퍼야 한다는 걸 알아버린 거였다. 아주 오랫동안.

그때 이후로 난 좀 변했는데, 잘 살다가도 가끔 막막해지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생겼다. 난 이미 충분히 오래 걸은 것 같은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새로운 슬픔이 기다리고 있는 모퉁이가- 많이 남았다는 건 아무리 애를 써도 익숙해지거나 담담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난 오랫동안이라는 말을 좀 겁내게 됐다. 아름다운 건 그렇게 순간이면서, 고통은 왜. 왜 그렇게 오랫동안.


탄식

고3 때 뜬금없이 그리스 비극을 좀 열심히 읽었다. 영어사전만큼 두꺼운 -정작 영어사전은 펴보지도 않았으면서- 소포클레스 전집을 빌려다 며칠 동안 야자 시간을 다 쏟아부으면서 읽었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시험기간에는 공부 말고 다 재미있으니까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때 난 완전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3년 동안 학교와 기숙사만을 오갔다. 내가 사는 건지 사육되는 건지 알 수가 없고 이렇게 하면 대학이란 걸 갈 수 있는지도, 그리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회의적이었다. 어쩌면 스무 살도 대학도 다 꿈이고 우리는 시지프스처럼 영원히 입시 공부만 하고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몇천 년 전 그리스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을까.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엘렉트라, 헤라클레스... 이들은 무식할 정도로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무자비한 운명 앞에 그들은 쓰러져 울부짖고 머리를 쥐어뜯고 옷을 찢고, 심지어 충동적으로 목을 매고 독약을 마셨다. 운명이 나에게 거대한 고통을 주었지만, 나는 그 고통을 표현하는 것으로 운명을 이기겠다는 듯이 그들은 탄식하고 또 탄식했다. "오오, 슬프고 슬프구나!" 이런 피맺힌 탄식을 오래 듣다 보면 피곤해졌고, 그때 창밖을 보면 학교와 원룸과 음식점 불빛들이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그들의 탄식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야자가 끝났고 난 -땅을 밟지 않고- 구름다리를 건너 기숙사로 가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했다. 아아, 슬프고 슬프구나, 탄식하면서.



이것도 짧은 글쓰기 조각조각. 재밌어서 계속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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