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때부터 글을 썼지 근데 영재는 아니었어..

읽을 수 있게 될 때부터 읽는 것을 사랑해왔고, 읽는 것을 사랑하니 당연히 쓰고 싶어졌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 전부터 나는 읽고 쓰는 것을 놀이로 삼으며 살아왔고 당연히 그것들은 내 삶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글을 어느 정도 -평소에 크게 창피하지는 않을만큼-  쓰는 데에는 딱히 엄청난 노력이나 재능이 필요하지는 않다. 어려서부터 책을 워낙 많이 읽었고 그걸 또 나름 열심히 따라 써왔던 터라, 예전부터 글 잘 쓴다는 소리는 항상 들어왔다. 교내 글쓰기상을 받아오고, 선생님이 성적표에 글짓기에 재능을 보입니다, 이런 말을 써주고, 그러면 신이 나서 더 자랑하듯이 글을 쓰곤 했었다. 어릴 때는 그 정도만 써도 칭찬받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노는 게 신나서 전보다 책을 덜 읽기는 하지만,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고 거기서도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니 조금만 더 읽어달라) 하지만 이제 난 그 말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됐고 요즘은 매일매일 생각한다. 나 왜 이렇게 글 못 쓰지...


생각 생각 생각 생각이 문제

단정하고 명료한 글이 쓰고 싶었다. 허세나 기교 없이, 깊고 정돈된 생각을 분명하고 정확한 언어로 풀어낸 글. 그렇게 목표-또는 이상-를 잡고 나니 알게 되었다. 내 글은 여기에 한 글자도 해당이 안 된다는 것.


좋은 글을 많이 읽었고 그걸 흉내내니까 당연히 사람들 눈에는 대충 잘 쓰는 것처럼 보이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예민한 사람은 금방 알아챌 것이다. 내 글이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 핵심은 없고 자꾸 겉멋만 부리는지. 중심을 못 잡고 빙빙 돌기만 하면서 어설프게 미문을 만드려고 하는지. 열심히 쓰다가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내가 평소에 가장 경멸하던 류의 글이었다. 한심했다. 왜 이런지 열심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생각이 문제다. 글이란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서- 생각을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일인데, 그 생각이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하고 흔들리는데 글이 안정적일 리가 없다. 중심이 비어 있으니 그걸 숨기려고 자꾸 허세와 겉멋을 끌어오고 그게 티가 나서 천박해진다. 이건 흔한 인터넷-또는 sns-의 아마추어 작가들의 약점이자 무엇보다 내 약점이다. 그나마 난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들보다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글쎄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럼 이제 어쩌나

문제를 알면 해결은 쉬운 거 아닌가. 오래 생각해서 하고 싶은 말을 딱 잡아두고 쓰면 될 거 아니야. 글쎄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사고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게 성숙하지도 않고 쉬지 않고 때로는 평생의 시간을 요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글쓰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일이고 때론 -많은 경우에- 무척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게다가 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글을 쓰는데 (이 블로그에 실린 대다수의 책, 영화 리뷰가 그렇게 쓰였다. 그렇다. 내 리뷰가 형편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생각이 정리가 안 되면 글은 더 안 써지고 그렇게 악순환에 빠져드는 것이다.


신문사-공적인 글쓰기-와 블로그-사적인 글쓰기-를 하면서 이런 결론을 얻었는데, 어쩐지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꾸 도망치려고만 하고 있다. 글을 쓴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요즘도 계속 조각조각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그걸 글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다. 워낙 짧은데다 내가 평소에 늘 품고 있던 생각을 그냥 털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조각글을 쓰는데 드는 내적 에너지는 거의 0에 가깝다. 시간과 사색, 그리고 필연적인 고통을 요하는 깊은 글을 써야 하는데 힘드니까 자꾸 쉬운 길만 찾는 것이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언제까지 대학신문 기사 좀 괜찮게 쓴다는 칭찬에 기뻐하고, 언제까지 그럴듯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면서 살아야 할까(그게 싫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 비루한 글에 하트 눌러주시고 구독해주시는 분들 저에게 엄청난 기쁨과 응원이 되어요). 내가 글을 업으로 삼을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쓰는 것을 좋아하고 아마 평생 좋아할 것인데 스스로 불만족한 상태로 오래 끌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찝찝한 결론

이 글이 무슨 대단한 각오를 다지는 출사표는 아니다. 차라리 너는 글을 참 잘 쓴다고 내게 말해준 초등학교 선생님을 향한 눈물의 사과, 또는 이런 사람한테도 글을 공개할 장을 제공한 포스타입 사를 향한 감사 정도에 가깝겠다.난 앞으로도 계속 비루한 글을 쓸 것이고 깊은 생각을 못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꿈지럭꿈지럭 애를 쓸 것이다.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로 가는 길이 가장 지난하고 고된 길이다. 난 글을 쓰면서 그걸 배웠고, 그것만으로도 헛된 노력을 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여담. 간결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담은 글이 지금껏 쓴 그 어떤 글보다 횡설수설 중구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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