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아니면 그냥 심심할 때, 귀 앞에 손가락을 대고 가만히 있는 습관이 있었다. 쿵, 쿵, 쿵 심장 박동에 맞춰 귀 앞의 혈관도 틱, 틱, 틱 작게 뛰었고, 그 연약하고 꾸준한 움직임을 오래 느끼고 있으면 이 비루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심장은 이렇게나 성실히 일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그게 과연 안심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실


상실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비가 생각난다.

아주 어릴 때 함평 나비축제에 간 적이 있다. 기억나는 건 거의 없다. 이제 와서 뭘 떠올려 보려고 해도 다 조작되고 미화된 기억일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의 그 촌스럽고 알록달록하고 아름답던 색깔들은 다 꿈일 수도 있다. 딱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 얇은 나비 도감을 선물받았다는 것. 엄마 아빠가 사줬는지, 축제 측에서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나는 집에 오는 차 안에서부터 며칠 동안이나 도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길고 어려운 이름들. 섬세하거나 찬란하거나 때론 섬뜩한 날개의 색깔과 문양들. 지금 그 도감은 없다.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도 잊어버렸다.

언젠가 화장실에서 허리를 꺾고 변기 물을 거듭 내리면서 엉엉 운 적이 있다. 행복에 대한 기억이 나를 가장 슬프게 했다. 그 안온한 시간, 아무것도 모르고 아름답던 시간은 다 어디 갔지. 분명 여기 있었는데 왜 다 어디 가고 없지. 아직 다 어른이 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예쁜 것들을 다 잃어버렸지. 그때 그 나비 도감 생각이 났다. 지금 서점에 가면 더 크고 선명하고 두꺼운 책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도감은 구할 수 없다. 어린 나를 며칠 동안이나 설레게 했던 그 화려한 타국의 나비들은 이미 팔랑팔랑 날아가 버렸다. 먼 곳으로 영원히.


평화


평화의 평은 '평평할 평'이지요. 그래서 평화라는 말을 들으면 넓고 잔잔하게 퍼지는 수면이 떠오릅니다. 그 안에는 그 어떤 눈물도 없고 누구도 피흘리지 않고 그저 잠잠히 끝없이 쉴 수 있을 것 같지요. 평화, 평화, 중얼거리면 입술 사이에서 작게 터져나오는 숨이 공기중에 고요하게 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지요.

평화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기도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평화, 평화 되뇌고 있으면 지금도 그치지 않고 흐르는 피의 바다가 떠오르고, 카메라를 보고 항복하며 손을 들던 아이가 떠오르고,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소년의 눈이 떠오르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목숨이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는지, 존엄, 사랑 같은 말이 얼마나 무가치하게 땅에 밟혀 버려질 수 있는지, 그런 의문들이 떠오르고,

더 간절히 되뇌게 됩니다. 평화, 평화, 그렇게 이름을 부르면 평화가 정말로 찾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호명하는 행위가 정말 평화를 불러오기라도 할 것처럼. 연약하고 무력하지만, 이 작은 행동이 더 작은 변화라도 불러올 수 있다고 믿으면서.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먼 옛날, 신의 아들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그날 천사들이 불렀던 노래는 이상하게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 땅에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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