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버스 타는 걸 좋아한다 낯설고 외롭고 슬프다 가로등 불빛, 자동차 헤드라이트, 교회와 모텔과 요양원 불빛이 지나가는 것이 커튼에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 시계 불빛이 깜박이는 것이 모두가 말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아름답고 슬프다 이유는 모른다 이렇게 평생 쓸데없는 것을 사랑하다가 끝내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머릿속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머릿속 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껌 광고 음악을 틀어서 라일리가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요즘 나도 그런 식으로 머릿속을 빙빙 돌면서 안 떠나는 문장이 있다. '네 다정함이 날 죽일 거야'라는 문장인데, (그 말의 유치함은 둘째치고) 내가 대체 이 문장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무슨 시집이나 소설에 나올 법할 소리지만 난 최근에 그런 책을 읽은 적이 없다. 혹시 인터넷에서 주워들었나 해서 검색해봤는데 아이돌 팬픽 같은 데나 가끔 등장하는 문장이더라. 아니 난 이런 거 읽은 적 없어... 걔네가 같은 그룹인지도 몰랐다고...

아무튼 그래서 요즘 하루종일 누군가의 다정함에 살해당하는 공상에 빠져 살고 있다. 다정함이 흉기가 될 수 있을까. 살을 찢고 피를 흘리게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해도 날씨가 더워서인지 실없는 상황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다정한 말]을 내뱉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지연]은 피를 뿜으며 쓰러진다!' 아니 이런 식으로 최후를 맞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이게 아예 실없기만 한 소리는 아니다. 난 늘 다정한 사람이 조금 두려웠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벽이 없을 수가 있지. 어떻게 먼저 말을 걸고 웃고 명랑할 수 있지. 여분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심지어 그걸 남에게 베풀기까지 하는 이들은 말 그대로 나와 다른 종족 같았다.

난 항상 어떤 한 사람을 너무 좋아해버리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왜냐하면 분명 나는 그 사람을 실망시킬 거니까. 분명 언젠가 날 싫어하면서 멀어질 거고 그러면 상처받을 거니까. 그래서 벽을 쌓고 입을 닫고, 그 유난을 떨다 3년 사귄 친구에게 '언젠가 네 마음을 열길' 이런 쪽지를 받기까지 했으나,

다정한 사람한테는 그게 쉽지 않다. 내가 '널 너무 좋아하지 않을 거야' 하고 벽을 쌓아도 다정한 사람은 두부 뭉개듯이 쉽게 마음 속에 들어와버린다. 억울한 일이다. 성질머리가 못돼처먹을 거면 외로운 거에 익숙하기라도 할 일이지 남의 흔한 호의에 맥도 못 추고 헬렐레 되고. 그러다 내 실수로 미움 사고. 왜 난 항상 내가 좋아하는 다정한 사람한테 상처를 주지. 그리고 나도 만신창이가 된다.

네 다정함이 날 죽일 거야, 라는 말이 요즘 그렇게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건 내가 또 다정한 사람을 좋아해버려서일까. 다정함을 마주했을 때 편안함이 아닌 살해의 위협을 느껴버리는 정신머리의 사람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관계를 도모해야 하는 걸까. 정말로 언젠가 다정함이 나를 죽일까. 그건 어떤 죽음일까. 묘비명에 뭐라고 적지. '다정함에 살해당하다. 아니, 아이돌 팬픽에서 본 말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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