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1박 2일로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즐거웠고, 나는 지금껏 궁상맞고 끈적한 자기연민만을 남기던 이곳에 이 여행을 어떻게 기록해야할지 고민중이다. 내 어휘의 빈곤함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순간. 우울하거나 우울한 척하는 이야기라면 밤새도록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밝음, 명랑함, 환함과 마주치면 난 말을 잃어버린다. 어떤 단어를 써도 대상의 반짝임을 그대로 담아낼 수가 없어 포기하고 만다. 이 순간이 소중해서 꼭 기록하고 싶은데 글자로 남는 것은 건조한 사실뿐이고 내가 붙잡지 못한 그 향기는 휘발되어 날아간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쓰는 것은 항상 장마철 장판 같은 꿉꿉한 이야기들뿐이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그늘 쪽으로 기어들게 되고. 이거 봐. 여행 재밌었단 얘기 하려다가 또 신세한탄 하고 있잖아.

그러니 처음부터 어떤 생생한 묘사는 포기하고 사실만을 기록하자면, 무엇보다, 우리는 아주 아주 오래 걸었다. 그림 같은 골목길을, 붐비는 관광지를, 햇빛이 내리꽂히는 산책로를, 또는 캄캄하고 으슥한 밤길을. 아주 오래도록. 끝없이 끝없이. 날씨는 무자비하게 더웠다. 첫날은 습하고 둘째날은 뜨겁고. 분명 여행 왔는데 왜 군장 메고 행군하는 기분인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저만치 멀리 뒤처져 헐떡거리며 같이 가, 천천히 가, 쉬었다 가,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데 보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힘이 빠지고, 무엇보다 종아리부터 발바닥까지가 끔찍하게 아파서. 이렇게 된 지 좀 됐다. 그냥 운동부족 때문이겠지 했는데 요즘은 좀 무섭다. 분명 한때는 매일 한두시간씩 산책을 하는 아이였는데. 그게 별로 옛날도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그렇게 고생하면서 만난 것들. 지하철에서 본 예쁘고 앙증맞은 부산 풍경.(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역에서 무표정하게 서있을 수 있었을까) 부산역에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며 광주 시민들이 군인들을 때려죽였다고 주장하던 사람들.(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설명하면 장르가 달라지겠지. 분노와 절망과 공포. 바보 같은 소리지만 진짜 무서웠다. 누군가 저기 광주에서 온 년이 있다, 라고 소리칠 것 같았다고) 밀면과 돼지국밥과 씨앗호떡과 월남쌈.(돼지국밥을 먹다 덴 혀가 아직도 깔깔하고 사실 좀 싱겁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많이 먹으니까 진짜 좋았다. 먹는 거 이렇게 좋아해서 어쩌지) 알록달록한 집이 가득한 가파른 골목길.(가난을 예쁘게 색칠하고 관람하는 위선에 대해서, 줄줄이 들어선 기념품 가게의 조악함에 대해서, 그리고 관광지가 아닌, 마을 자체가 그림처럼 예뻤다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위선이고 뭐고, 관광지와는 상관없이 그 마을은 정말로 예뻤단 말입니다. 하지만 그모습을 저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진 찍는 건 얘기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사진을 안 찍었단 얘기는 아니고...) 밤바다에서 추던 춤.(밤의 파도소리에는 정말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마력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우리가 흥을 못 이긴 걸까. 아무튼 새까만 부산 밤바다에서 우리는 주위의 시선도 잊고 춤추며 미쳐 날뛰었고 효경은 오늘부터 교원대 엑소다) 무섭고 으슥한 골목길. 그리고 농담처럼 마주친 밤의 부둣가. 둥둥 떠있던 고깃배. 물을 튀기며 놀던 목욕탕. 삼락공원에서 타던 자전거.(2인 자전거는 무척... 무척 힘들었고 난 이런 건 쌍암공원에서도 탈 수 있는데.. 라고 생각했으나 암튼 재미는 있었다) 낯선 억양의 목소리들. 낯선 친절들. 그리고 내 친구들. 이틀 동안 내가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표정을 짓고 낯선 목소리를 냈다. 나는 명랑한 것, 밝고 환한 것, 온전하게 건강한 것을 보면 의심부터 든다. 이게 정말 내 것일까? 내가 이런 것을 가져도 되나? 지난 이틀이 그랬고, 또 친구들이 그렇다. 이런 아이들이랑 친해지고 웃고 여행을 같이 간다는 게, 이상하고 신기하고, 고맙다.

완성된 형태의 글을 쓰고 싶어 버스에서부터 낑낑댔는데 이게 한계다. 난 최선을 다했어. 암튼 결론은 여행은 역시 차를 끌고 오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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