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난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활자중독이다. 물건을 사면 사용설명서를 읽고 치킨을 먹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신문지를 읽고 음식점 메뉴판을 읽고 화장품 성분표를 읽고 화장실 낙서를 읽고 사람들이 입은 티셔츠 문구를 읽고 sns는 트위터를 하고 (당연히) 책을 엄청나게 읽는다. 여덟 살 때인가 국어사전을 사줬더니 그걸 ㄱ부터 차근차근 읽어서 부모를 기함시킨 적이 있으며 성경책을 선물 받았을 때 역시 창세기부터 성실하게 읽어나가는 바람에 열정 가득한 어린 신도로 오해받기도 했으나 아마 불경을 사줬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읽을거리를 가리지 않아 집에 있는 어른들 책도 다 읽어버리는 바람에 "엄마, 자위가 뭐야?" 이런 질문을 해서 모두를 당황시킨 적도 있고 나이에 맞지 않는 휘황찬란한 어휘를 사용해서 쟤는 천재가 아닌가 하는 슬픈 오해를 받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책을 참 많이 읽는구나!라는 칭찬은 책도 좋지만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염려로 바뀌었으나 나는 굴하지 않고 수업 중에 책상 밑으로 책을 읽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이 되었느냐면 답은 아니오. 논리적이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었느냐면 그것도 아니오. 그저 비아냥거리는 걸 쓸데없이 잘하는 오타쿠가 되고 말았으나 이제 와서 고치는 것도 불가능하니 아마 평생 이렇게 살아야겠지.

어릴 때 좋아하던 그림책 중에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다. 책을 너무 사랑하는 아이 엘리자베스가 운동도 안 하고 연애도 안 하고 평생 책만 미친 듯이 사제끼다가 책이 산처럼 쌓여 집 밖으로 못 나갈 지경이 되자 자기 집을 도서관으로 기증한다는 이야기.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나도 저렇게 되겠다고 다짐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책에 미친 할머니가 되어 동네 아이들에게 좋은 동화책을 막 나눠주고 다녀야지. 다들 뭐야 미친 할망구다 하면서 도망가겠지만 유난히 눈을 반짝거리는 애가 하나 있을 것이다. 그애에게 내 알라딘 아이디와 책 전부를 물려주고 죽는 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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