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서가 깊숙이 들어가 오래된 책을 찾는 것처럼, 시간을 거슬러 오랜 기억을 찾아보자. 최근의 기억이 맥락과 줄거리가 있는 한 편의 영화라면, 열 살 아래의 기억은 아주 짧고 흔들리는 영상이다. 대사는 뭉개져 들리고 인물들의 얼굴도 흐릿해진다. 더 나아가 일곱 살까지 멀어지면 기억은 이제 모든 상황과 유리되어 홀로 떠다니는 딱 한 마디의 말, 한 조각의 마음, 한 장의 그림이 된다. 더 오래전,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을 찾아가면, 이제 분명한 건 아무것도 없어진다. 그것은 더 이상 기억이 아니고, 더 이상 시각, 청각, 후각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짧은 노랫소리, 오래된 필름 사진, 좋아하던 원피스 자락 같은 파편이 뒤섞인 캄캄한 동굴 같은 것이 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수차례 길을 잃는다. 뿌리를 잃은 기억은 쉽게 부풀고 변색되며, 우리는 우리가 기억한다고 믿는 것과 싸워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황갈색 원피스, 흰색 천 레이스가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옷은 정말 있었던 걸까? 왜 그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을까? 금박 왕관을 쓰고 가족사진을 찍던 기억은 정말로 내 것일까, 아니면 후에 그 사진을 보면서 내가 만들어낸 기억일까?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왜곡하고, 윤색하고, 때론 완전히 창조하거나 삭제하기도 한다. 희미하고, 흐릿하고... 차라리 투명하다고 부르는 게 정확할 만큼 옅어진 농도의 기억들. 기억하겠다고 다짐한 얼굴이 있는데 자꾸 모래처럼 부스러져 흘러내린다. 목소리는 이미 창작의 영역으로 날아가 버렸다.

김상중의 소설 <국경시장>에는 돈 대신 기억을 화폐로 사용하는 시장이 등장하는데, 나는 읽는 내내 사진 한 장을 떠올렸다. 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반에 찍혔을 그 사진 속에는 나랑 비슷하게 생긴 아기가 장난감으로 가득한 방에 앉아 있다. 방을 가득 채운 색색의 장난감들, 그중 하나라도 다시 가질 수 있다면 난 기꺼이 나의 모든 기억을 지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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