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기운이 있다. 하루에 스무 시간 이상을 누워 보낸다. 비는 퍼붓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하늘은 종일 회색이다. 시간은 늘어지는 듯하면서 순식간에 지나가고 손에 잡히는 건 하나도 없다. 하루 종일 보는 건 핸드폰 화면에 비친 내 얼굴. 눈이 죽어 있다. 몸은 평소의 1.2배 정도 느리고 중력도 그만큼 강해진 것 같다. 나는 더 굼떠지고. 고여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생생한 꿈을 꾼다. 낯설지만 딱히 초현실적인 구석은 없고 무척 구체적인 세계가 존재한다. 나는 그곳에서 물장구를 치고 춤을 추고 영화를 보러 간다. 방학이 얼마 안 남았어, 이런 생각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느끼고. 심지어 꿈은 조금씩 이어진다. 잠깐 깼다가 다시 잠들면 나는 아까 그곳에 다시 있다. 여기 어제 왔었는데, 이런 생각도 하고. 꿈속의 장소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의 모양. 날씨. 공기. 감촉. 내가 정말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잠에서 깨면 어딘가 다녀온 것처럼 몹시 피곤하다. 아 그게 꿈이고 이게 현실이구나, 깨닫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꿈에서의 피로를 풀기 위해 현실에서는 죽은 것처럼 누워 있고, 그럼 당연히 스멀스멀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언젠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꿈이 현실을 집어삼킨다면?

곧 개강이고 나는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고여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면 이상하고 생생한 꿈도 이제 그만 꾸겠지. 그게 좀 아쉽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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